반도전쟁의 역사와 윌리엄 네이피어 경

가난한 군인 죠지 네이피어 대령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는데, 그 넷 모두 군인이 되었다. 그 중 해군 장교가 된 막내 헨리 에드워드를 제외하고 셋은 모두 육군 장교로서 활약했다. 세 형제는 모두 반도전쟁 파견 부대에 포함되어 무어 장군과 웰링턴 장군 휘하에서 '네이피어 3형제'로 불리우며 주목 받았다. 훗날 세명 모두 고급 장교가 되는데, 그 중 첫째 찰스 제임스는 훗날 인도 주둔군 총사령관을 역임했고, 둘째 죠지 토마스는 남아프리카 식민지(케이프 콜로니) 주둔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그 중 셋째 윌리엄 프란시스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



윌리엄 프란시스 패트릭 네이피어(William Francis Napier, 1785~1860)는 1800년에 왕실 아일랜드 포병연대에 사관으로 입대하면서 군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제 52 보병 연대에 배속되었고, 존 무어 장군의 눈에 들어, 그의 덴마크 원정 때 따라가 제 43 보병연대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이후 그는 무어 장군이 이끄는 첫 반도 원정에서 복무하다 코루나 퇴각전 때 건강을 심하게 헤쳤으나, 그 때문에 평생 고생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반도전쟁의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 참전한다. 탈라베라 전투, 코아 전투, 후엔테스 데 오뇨로 전투, 바다호스 전투, 살라만카 전투, 피레네 공방전, 니브유 전투, 니브 전투, 오르테스 전투, 툴루즈 전투까지, 이 모든 전투들에 참모, 중대장, 대대장으로, 바다호스 전투에서 연대장이 전사한 후부터는 그 제 43 보병연대의 연대장으로 참전했다. 소령에서 현장 승진된 윌리엄 네이피어 중령은 그냥 종군만 한 수많은 장교들 중 하나가 아닌,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해내며 필요할 때는 명령이 없어도 현장판단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고, 부하들에게 신뢰받는 장교였다. 게다가 복무 기간 동안 전투에 부상을 입은 것도 십수차례에 달하는 것에서, 그가최전선에서 싸워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워털루 전역 때도 그는 다시 43 연대를 이끌고 참전, 워털루 전투 후에는 점령군으로 계속 1819년까지 프랑스에서 주둔한다.

그러나 네이피어 중령의 이후 처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러 부대가 해산되는 가운데 대령 계급을 확보하지 못하여 1819년에 예비역으로 돌려진 그에게 주어지는 봉급은 소령급 월급의 절반. 1811년에 사촌 캐롤린 아멜리아 폭스(정치가 찰스 제임스 폭스의 조카)와 결혼하고 아이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29세의 가장으로서는 부족한 수준이었기에, 이제는 수많은 가난한 예비역 육군 중령들 중 하나일 뿐인 윌리엄 네이피어가 택한 길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였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놀면서 소일했던 것 같다. 매일 외식하고, 전시회들을 구경하러 다니고, 친구들과 술마시고 얘기하고, 가끔은 에딘버러 Review 같은 비평지에 글을 기고하는 정도로 글을 썼다.

그러던 1823년 어느 봄날, 그와 얘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고 있던 변호사 랑데일 남작 헨리 비커스테스가 그에게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뭘 할 생각입니까?" 네이피어는 그 날 저녁식사를 어디서 할 예정이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여 대답했는데, 랑데일 남작이 얘기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랑데일 남작은 네이피어 중령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단순한 즐거움에 삶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비평지에 쓴 글들은 내게 당신이 좋은 문장가라는 확신을 줬다, 당신은 지난 전쟁의 참전자로서 그 전쟁을 꿰뚫고 있으니 그에 대해 글을 써라", 라는 얘기였다. 네이피어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것은 그냥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친구로서 정말 진지하고도 강하게 종용하는 어투였고 한다.

집에 돌아온 네이피어는 랑데일 남작의 말을 진지하게 고심했다. 그리고는 아내 캐롤린에게 역사책을 쓸 자격과 능력이 자신에게 있을지 물었고, 그녀는 남편이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되며, 또 그렇게 해야 된다며 응원했다. 며칠 후 네이피어는 사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윌리엄 네이피어가 즉시 연락한 사람들 중 하나는 바로 반도전쟁의 영웅, 웰링턴 공작 본인이었다. 웰링턴은 자신의 개인적 의견이 들어간 사적 편지들은 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 내용이 출판될 경우 당시 참전 지휘관들 중 자신들의 행동이 비난당한다고 느껴 상처입을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대신, 그는 네이피어에게 모든 명령서와 공식 문서들을 열람할 권한을 줬고, 그 문서들 중에는 비토리아 전투 직후 노획된 죠셉 보나파르트 왕의 공문서와 서한집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후 몇년간 그야말로 사방팔방을 오가며 사료를 모으고 참전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방문해 스셰 원수를 만나고, 네 원수의 미망인을 만나기도 했으며, 그 외 프랑스 시점에서의 많은 사료들을 확보하고 런던에 남아있던 아내에게 그 정리를 맡겼다. 프랑스군 문서들은 대부분 암호화되어 있어 해독이 쉽지 않았으나 아내 캐롤린이 해석하는데 힘썼으며 여기에 '그' 술트 원수가 도움을 줘, 부하에게 문서 일부를 영어로 번역하게 하여 네이피어에게 보내줬다. 이렇게 수년간 수집한 방대한 1차사료들과 참전자 인터뷰들을 가지고, 네이피어는 무려 16년간 집필에 몰두했다. 그는 이 작업에 파묻혀 살았고 그동안 그 아내가 전력을 다해 조력했다. 네이피어는 이후 책을 아내 캐롤린에게 바쳤다.

1823년 그가 처음 집필을 생각한지 5년만인 1828년, "History of the War in the Peninsula" 제 1권이 출판되었다. 제 1권은 나폴레옹이 동부 전선을 정리하고 이베리아로 눈길을 돌린 1807년부터 존 무어 장군이 전사한 1809년의 코루나 전투까지를 다룬다. 제 2권은 1809년 영국군의 귀환과 탈라베라 전투부터 포르투갈로의 후퇴를, 제 3권은 1811년 알부에라 전투까지를, 제 4권은 1812년 시우다드 로드리고 공성전까지, 제 5권은 바다호스 공성전과 이후 살라만카 전투, 1813년 비토리아 전투까지를 다룬다. 마지막 권으로 툴루즈 전투까지를 다루는 제 6권은 1840년에 완성되었다.



출판사가 제 1권의 판매실적에 실망한 후로 나머지 권들은 네이피어가 사비를 들여 출판해냈는데, 이는 출판사의 크나큰 실수였다. 이후 반도전쟁사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논란 때문이기도 했다. 반도전쟁사는 그 참전자들이 모두 다 새파랗게 살아있을 때 쓰여졌고, 앞서 말한 웰링턴 공작의 예견대로 그 서술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네이피어의 서술과 세부사항들을 잘못되었다고 공격하며 비평지와 신문 칼럼들에 비판을 실었다. 네이피어는 그 다음 권을 펴내면서 자신이 받은 비판 사항들에 대한 반박문과 반박 사료들을 실었으며, 그래서 제 3권과 제 5권은 역사 서술 자체 이외에 반론문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논란들은 대중적 관심을 끌었고, 그에 따라 "반도전쟁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반도전쟁 기념행사가 열리고, 반도전쟁 전공 훈장이 만들어질 때마다 책은 유행하였다.

또한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찬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네이피어가 1860년 2월 12일 작고했을 때 실린 GENTLEMAN'S MAGAZINE의 부고 기사에서 인용하는 THE TIMES지의 논평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전략)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사단과 여단들의 모습 뿐 아니라 반도 원정부대의 모든 연대들과 그 지휘관들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행군, 교전, 전투들 모두가 캔버스에 마치 사진같은 충실함으로 그려졌고, 이는 역사 회화들이 보여주는 창작성이 아닌, 마치 마지못해 들려주는 실제 기억의 회고같은 문체로 설명되었다. 부사코 전투에서 경보병 사단의 진군을 명령하는 크로퍼드 장군의 날카로운 외침은 아마 글을 써내려가고 있던 저자 본인의 귀에 생생히 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후략)" (...As event after event was unfolded in the panorama, not only the divisions and the brigades, but the very regiments and regimental officers of the Peninsular army, became familiarized to the public eye. Marches, combats, and battles came out upon the canvas with the fidelity of photographs, while the touches by which the effect was produced bespoke, not the ingenuities of historic art, but the involuntary suggestions of actual memory. The shirillness of Crawfurd's scream at Busaco as he ordered the Light Division to charge, was probably ringing in the author's ears as he wrote...)


그리고, 오류들을 지적하면서도 자기 관점의 반도전쟁사를 저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반도 전쟁이라고 하는 영국사에 있어 중대 사건에 대한 역사를 집필하려 한 사람은 많았으나, 그 중 그 의도를 실천으로 옮긴 사람은 오직 네이피어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반도전쟁사는 대단한 권위와 위치, 영향을 가지게 되었다. 1840년의 네이피어 이후 반도 전쟁사서는 찰스 오만 경이 7권짜리 The History of the Peninsular War를 1903년에 펴내기 전까지 나오지 않았으며, 네이피어의 반도 전쟁사는 오랫동안 인기를 끌며 널리 읽혔다.


[노년의 네이피어]


윌리엄 네이피어는 이후 형 찰스 네이피어가 행한 신드 정복전쟁의 역사를 정리한 History of the Conquest of Scinde와, 그 후에는 History of the Administration of Scinde를 써 펴냈고, 이후에는 더 타임즈에 논설문들을 기고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동안 네이피어는 1830년에는 대령으로, 1842년에는 소장으로, 1851년에는 중장, 그리고 1859년에는 대장으로 승진되었고, 그 4개월 후 7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네이피어의 반도전쟁사는 '실제 경험자'가 보여주기 쉬운 몇가지 단점들, 다시 말해 넓은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지 못하고 기억이나 감정에 의존하는 오류들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한 단점들을 지적하고 더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려 한 것이 1900년대 찰스 오만 경의 저작들이고, 그 이후 마이클 글로버 등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반도전쟁사를 저술했다. 그리고 그 모두가 네이피어의 반도전쟁사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더라도 큰 비중으로 인용하고 있다. 내 "영국이 치른 반도전쟁" 연재도 이 네이피어의 반도전쟁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학자도 아닌 평생 군인이었으면서, 전력을 다해 이런 대작을 완성시킨 점에 있어 충분히 존경받을만한 인물이 아닐까..




참고문헌:

Napier, William Francis Patrick. 1828~1840. History of the war in the Peninsula and in the south of France, from the year 1807 to the year 1814. London: T. & W. Boone.

Napier, William Francis Patrick, and Henry Austin Bruce Aberdare. 1864. Life of General Sir William Napier. London: J. Murray.



현재 윌리엄 네이피어의 반도전쟁사 여섯권과 그의 전기가 모두 구글 북스에서 무료 열람 가능하다. (위 전기 저자명에 네이피어 본인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본인의 서한들이 대단히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 자서전이 아니다.)

핑백

  • '3월의 토끼집' : 포스팅 계획 진척 현황 2011-01-18 07:31:55 #

    ...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의 영국 총리 재임기 (1828~1830) : 완료! 윌리엄 네이피어 경의 반도전쟁 : 완료! 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뒤 모티에의 일생 제 8부 : 작성중 시애틀 대파업 : 당장 작성하려다가 아무래도 이건 실제 발발 시간에 맞 ... more

덧글

  • 반쪽사서-엔세스 2011/01/12 13:53 #

    우리도 한국전쟁에 대해 쓰여진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겠네요. 어째 다들 잊어가는 분위기 같아서...
  • 월광토끼 2011/01/12 13:57 #

    그래도 책 자체는 계속 나오고 있지 않나요? 지금 사람들이 잊어가는건 한국전쟁이 아니라 독서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 스팅 2011/01/12 13:53 # 삭제

    오 남은건 죠지 토마스 네이피어의 이야긴가요
  • 월광토끼 2011/01/12 13:56 #

    음.... 뭐랄까..
    이영도씨가 독마새를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죠 ㅎ
  • hyjoon 2011/01/12 14:31 #

    마지막 한문단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어갑니다. 오오오...
  • 월광토끼 2011/01/13 06:04 #

    구글 북스가 제공하는 '미리보기' 서비스는 정말 유용한데, 출판된지 1세기 이상 정도 된 책들은 아예 전체를 무료 PDF로 다운받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책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캔도 나름 깔끔하게 되어 있는 편이지요.
  • Jes 2011/01/12 16:38 #

    구글 북스라.... 잘 읽었습니다.
  • 월광토끼 2011/01/13 06:05 #

    구글 북스가 제공하는 '미리보기' 서비스는 정말 유용한데, 출판된지 1세기 이상 정도 된 책들은 아예 전체를 무료 PDF로 다운받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책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캔도 나름 깔끔하게 되어 있는 편이지요.
  • 아르니엘 2011/01/12 17:15 #

    본문과는 관계 없지만, '무려'는 숫자 앞에만 쓰는 말이죠.
  • 월광토끼 2011/01/13 06:07 #

    무려의 용법에 무려 그런 규칙도 있었군요 [....] 문장 구조를 수정했습니다.
  • 시쉐도우 2011/01/12 20:11 #

    '지금 (한국) 사람들이 잊어가는 건 독서 그 자체'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여러모로 반성하게 만듭니다.
  • 월광토끼 2011/01/13 06:07 #

    모두가 그만큼 여유가 없어지고 지나치게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게 되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 인형사 2011/01/12 20:15 #

    찰스 제임스 폭스와 인척이라고해서 누군가 찾아보니까 레녹스 자매들의 아들이군요. 어머니인 사라 레녹스는 찰스 2세의 사생아 리치몬드 공작의 손녀이고 한때 여왕이 될 뻔 했던 비운의 여인이었죠.

    레녹스 자매들간의 서한문을 바탕으로 그녀들의 삶을 재구성한 Aristocrats라는 미니 시리즈를 BBC에서 만든 게 있지요.

    그런데 정확하게는 찰스 제임스 폭스와 사촌이고 결혼한 캐롤라인(할머니인 캐롤라인 레녹스의 이름을 따랐겠군요)과는 오촌이네요. 영어에서는 사촌 이상이면 다 Cousin이니까 헷갈리지요.
  • 월광토끼 2011/01/13 06:13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네이피어 형제들의 군 내 출세는 리치먼드 공작의 '빽'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도 합니다.

    저도 사촌이라고 쓰지 말고 그냥 '친척'이라고 쓸 걸 그랬습니다. 커즌은 그냥 사촌으로 번역하는게 습관이 되어 있다보니 -_-;;

    사라 레녹스의 경우 '국모'가 될 뻔하다가 부유한 귀족과 결혼하고, 그게 안좋게 끝나자 택한 재혼 상대가 빈곤하고 장래성 없는 군인이었다는게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그 둘은 행복하게 살면서 애를 무려 여덟이나 낳아 키웠고 말입니다..


    Aristocrats는 저도 구해 볼까 말까 망설이던 중이었습니다만.... 괜찮았나요?
  • 인형사 2011/01/13 09:44 #

    Aristocrats는 저는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 가족사에 당시의 시대상이 변화가 같이 엮어들어있는 것이 볼만 했지요.

    사라 레녹스의 경우 왕비가 될뻔 하다가 가난한 군인의 아내가 되었다는 극적인 삶을 살았다면, 다른 자매들도 만만치 않게 극적인 삶을 살았지요.

    첫째인 캐롤라인은 18세 연상인 헨리 폭스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가 의절 당했지요.

    둘째인 에밀리는 루쏘의 에밀을 읽고 감동 받아 자식들을 루쏘식으로 기르려고 데려온 가정교사와 나이 41에 재혼을 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고, 그 자식 중에 한 명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가담해서 죽기도 하지요.

    Cousin은 아랫것들의 경우에는 사촌 이상은 잘 알지도 못할 것이므로 사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텐데, 윗것들로 가면 first cousin, second cousin 하면서 족보를 따지니 골때려지지요.

    저 위의 윌리암과 캐롤라인의 관계는 first cousin once removed가 되겠군요.
  • 월광토끼 2011/01/15 09:05 #

    감사합니다. 저도 꼭 봐야겠습니다.
  • 행인1 2011/01/13 10:17 #

    평범한(?)화가가 될뻔했던 예비역 장교가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군요. 그나저나 당대에 (노획문서가 아닌)프랑스 사료까지 찾아보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한 노력이었을듯 합니다.
  • 월광토끼 2011/01/15 09:06 #

    다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료를 수집한거니까요..
  • 골드핑거 2011/01/13 22:10 #

    네이피어경이 이런분이셨군요. 명쾌한 포스팅 덕분에 호기심이 풀렸습니다ㅎ
  • 제국군 2011/03/06 12:08 # 삭제

    끝까지 완파하고나니 이런게 재데로된 역사란기분-;
    여느셰계사 문집보다 훨씬 재밌다구요!
    그런고로 글좀 퍼갑니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삼왕국 전쟁사 또는 단순히, 영국 내전사

7년전쟁 북미전역

말보로 공작의 일생

로열 네이비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전쟁

라파예트 후작의 일생

영국육군 블랙왓치 부대史


통계 위젯 (화이트)

33155
973
470409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420

I Support ROKN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아지캉 최고

9mm Parabellum Bullet

the pil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