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UM SOCII: 동맹시 전쟁사 - I

[기원전 4세기 경 이탈리아.]


로마 공화국 후기의 최중요 화두,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제시한 주 요점은 로마 공화국 소유의 국유지(ager publicus)들을 재분배하는 것이였는데, 문제는 이 국유지들이 공토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국유지들의 상당한 부분이 로마가 기원전 4세기~3세기 경 다른 이탈리아 민족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확보한 영토들이었다. 그런데 이 국유지들에는 토지 소유권이 불확실한 이탈리아 자영농들이 계속 농사짓고 살고 있었다. 이 이탈리아인들은, 토지개혁이 자신들이 내쫓기거나 농토를 빼앗기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개혁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다. 이 자영농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국유지에 투자한 부유한 지방 이탈리아 세도가들도 이 토지개혁에 의해 타격을 입게 될 것이였다. 로마법 상 오로지 로마 시민들과 라틴민권 소지자들만이 로마의 땅을 소지하거나 사고 팔 수 있었기에, 만약 토지 개혁이 실행된다면 로마의 평민들은 득을 볼지 몰라도 이탈리아인들에게는 크나큰 재산 손해가 되는 것이였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로마 시민권 문제였다.

여기에서 잠깐 살펴보자.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등급의 권리를 가진 것으로 나뉘어 졌다. 첫째가 로마시와 그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가진 완전한 시민권ius Romanum이였고, 둘째가 절반의 시민권이라 할 수 있는 라틴민권(ius Latinum)였으며, 마지막이 로마 시민권과는 완전한 별개의 이탈리아 동맹시민권(ius Italicum)이였다. 이 이탈리아 동맹시민권이 꼭 열등한 등급의 권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동맹시들은 전시 로마의 군대에 반드시 병력을 제공해야 했고 모든 외교적 교섭 권한을 로마에게 맡겨야 했으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로마는 이들 동맹시들에 대해 외교 이외의 부분은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토지개혁과 토지 재분배의 문제로 인해 로마 시민권의 획득 여부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게 된다. 그래서 이에 대응해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제시한 방법은 바로 라틴민권 소지자들 (주로 라티움 지방과 에트루리아 지방에 거주하는)에게는 완전한 로마시민권을 허용하고 라틴민권은 이탈리아인들 전체로 그 대상을 확대한다는 합리적인 것으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티베리우스가 살해당하고 난 뒤에도 이 문제는 계속 논의되었고, 그래서 집정관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에 의해 기원전 125년 드디어 해당 안건이 로마 원로원에 상정된다. 역사가 아피아노스의 서술을 따르자면, 집정관 풀비우스 프라쿠스는 친이탈리아파라고 해도 좋을 인물이었고 그는 이탈리아인들을 로마가 통치해야 할 신민들이 아닌 파트너라고 여겼다. 하지만 풀비우스의 제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오히려 원로원은 풀비우스에게 이베리아 원정이란 임무를 부여하였고 풀비우스는 해외 원정에서 자신의 임기를 다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뒤 풀비우스가 후원하던 정치적 동맹자, 살해당한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호민관이 되어 토지 문제와 함께 시민권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와 기원전 122년에 재차 상정했을 때도, 이는 또다시 부결되었다.

[기원전 122년, 연설 중인 호민관 가이우스 그라쿠스.]


이 안건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던 데에는 네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이 방안이 통과될 경우 로마시민권 소지자의 수가 두배로 증가하게 되기에 로마 공화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일반 로마 시민들이(평민들) 자신들에게 분배될 이익(곡물 배급과 토지분배)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탓이고, 셋째는 증가한 시민권자들의 수를 이용할 정파 또는 야심가의 등장을 염려한 오프티마테스 세력의 견제였다. 그러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탈리아인들 자신들이 로마 시민권 획득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럴 필요성도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이 때 그라쿠스 형제 등의 포풀라레스 일파가 시민권 대상자 확대를 제시한 것은 어디까지나 토지개혁을 위한 보상책에 불과했고, 이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살해당하고 포풀라레스 일파의 정치적 입지도 줄어들게 되면서 토지개혁 문제가 흐지부지되었고, 그러자 이탈리아인들도 로마 시민권을 얻고자 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ius Italicum과 그것이 보장하는 자립권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92년 경에 로마 시민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이는 기원전 125년의 시민권 보장 요구 때와는 사못 다른 분위기와 욕구에 의한, 보다 절실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향후 본 기획은 다음 링크 http://kalnaf.egloos.com/tag/BellumSocii에 모여 정리될 것입니다.


ps.
이번편은 지나치게 짧은 감이 있는데, 점점 더 길어질 것입니다.

덧글

  • 행인1 2011/02/20 17:03 #

    티베리우스도 공유지 재분배에서 이탈리아인들과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군요. 그의 개혁안과 함게 묻혀버리긴 했지만.
  • 모에시아 총독 2011/02/20 17:38 #

    의외로 처음에는 이탈리아 동맹시민들도 시민권 확대에 시큰둥했군요. 그들이 차후 입장을 바꾼 이유가 궁금해 지네요. 점점 흥미진진해 집니다. ㅎㅎ
  • 萬古獨龍 2011/02/20 18:02 #

    오오 오오.. 좀 더.. 좀 더...! (퍽)
  • 조이 2011/02/20 19:56 # 삭제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나중에 로마시민권이 문제가 된 이유는, 로마 제국의 영토가 광대해지면서 로마 시민이 만질 수 있는 이익이 갑자기 늘어났던 게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인형사 2011/02/20 22:31 #

    현재 미국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는 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불법이민자 문제와 겹쳐 보이는군요.
  • Allenait 2011/02/21 01:29 #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 dol 2011/02/21 09:13 # 삭제

    원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법.

    로마의 영토가 증대되면서 로마 군 복무로 얻는 이익도 같이 증대되었으니.
  • 2011/02/21 16: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autitia 2012/03/14 18:13 #

    이 주제에 대해서는 제가 조만간 하나의 장황한 게시물로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ㅋㅋㅋ
  • Lautitia 2012/03/14 23:50 #

    아 그리고 BC 125년도 집정관 풀비우스의 임지는 히스파니아가 아니라 남프랑스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삼왕국 전쟁사 또는 단순히, 영국 내전사

7년전쟁 북미전역

말보로 공작의 일생

로열 네이비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전쟁

라파예트 후작의 일생

영국육군 블랙왓치 부대史


통계 위젯 (화이트)

60126
983
4707576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417

I Support ROKN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아지캉 최고

9mm Parabellum Bullet

the pil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