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나 게임을 통해서 흔히 보게 되는 장면이다. 총탄을 맞은 군인이 비명과 함께 쓰러지면 그 동료가 다급하게 외친다. "메디이익-! / 코어-맨-! (해병대) / 자니타이터-! (독일군)". 그러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어깨에는 적십자 완장을 찬 의무병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괜찮아 별로 심하지 않아'를 연발하며 설파제를 설설설 뿌리고...
그런데 이렇게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직후 치료를 받는 모습이, 끔찍해 보일진 몰라도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정말 몇 안되는 군인들만이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만 누릴 수 있었던 사치라면 어떨까. 주둔지에서 병이 들거나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민간요법 정도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치료라면? (그냥 내버려지지 않았을 경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가 유명해진 것도 열악한 군 의료 체제 때문이고, 불과 한세기 반 정도 전까지만 해도 전장의 군인들이 전문적인 치료나 수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마련이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 끔찍한 일이다. 3세기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귀족 지휘관들에 의해 단순 소모품 취급을 받았으며 부상자=사망자였을 (몸 안에 박힌 납을 빼내지 못해 오염으로 죽는다거나, 더러운 수술 도구로 봉합한 부위가 썩어들어간다거나 하는 건 그마나 치료를 받기라도 했다는 얘기다!) 일반 보병들의 처지는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그런데 수세기가 아니라 아예 1천 6백년 정도 더 과거로 가면 상황이 요상하게 달라진다.
서로마 제국 멸망으로 인해 많은 것이 무너졌다는 의미에서 유럽의 고대와 중세 사이의 기간을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더 이상은 그렇게 안부르고 후기 고대Late Antiquity라는 표현을 쓴다) 이 '암흑기'란 적어도 의료 부분에서 잘 들어맞는 단어가 된다. 이게 무슨 얘기인고 하니.

고대 로마. 나름 '전문화'가 되었다는 마리우스 군제개혁 이후의 로마 공화국군에서조차 군단 내 부상자/병자들에 대한 치료는 군단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같이 '병사를 아끼는' 사령관들은 사비를 들여 의사들을 고용, 군대와 함께 이동시키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그저 무관심하기 일쑤였다. 이 상황이 바뀐 것은 아우구스투스의 소위 '원수정'이 성립된 이후였다.
기원전 30년 경, 아우구스투스는 병사들의 전투력과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전문적인 의무부대를 창설한다. 이들이 그 이후로 제국 멸망 때까지 지속될 전문적인 군 의료 체제/인력의 시작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능력있는 의사들을 군의관으로 입대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혜택을 내걸었다. 입대하는 의사들에게는 자동적으로 기사 작위(dignitas equestris)가 수여되며, 완전한 로마 시민권이 보장되고, 은퇴 후에는 상당량의 연금과 면세 혜택이 주어졌다. 이렇게 해서 모인 제국 초기 군의관들은 그리스인들로, 그리스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진료법/수술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이러한 실증성/전문성은 곧 제국군 의무대의 특징이 된다. 나중에 가면 로마군에서 자체적으로 전문 군의학원을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의학 서적들을 출판하는데에 이르렀으며, 진료/수술 방법을 체계화 시키고 통일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이 확립될 때마다 빠른 개정을 통해 포함시키는 훌륭한 전문성을 보여주게 된다.
로마 제국군 의무대의 주 목적은 (현대적 군대의 의무대와 마찬가지로) 비전투 손실률을 최소화 하고, 부상자의 전선 복귀율을 최대화하는 것이였다. 이는 단순히 치료 뿐 아니라 전반적 군 복무 환경의 개선에도 영향을 끼쳤다. 군의관들은 병사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주둔지에서의 하수처리시설 정비, 깨끗한 물의 지속적 공급, 야채와 고기, 빵과 과일을 골고루 조합한 다양한 식사, 정기적 건강검진, 막사에서의 모기장 설치, 사망자의 화장, 그리고 병사들 개개인의 청결 유지등을 도입하고 강제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나? 서기 1세기 경에 이르면 제국의 모든 의사들은 군의관이 될 게 아니어도 제국군 군의학원에서 가르치는 군의관 훈련과정을 수료해야 할 정도로 군의관의 권위가 커졌으며, 1개 군단에서 세번째로 높은 지휘권자 (군단장, 기병대장 다음으로)가 군의관 출신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직위를 군단 병영 사령관, praefectus castrorum 이라고 한다.) 또한 대단히 전문화가 된 이 의무대는 단순히 의사 몇명이 군단을 따라 다니는 정도가 아니었다. 보통 최대 복무기간인 25년을 만기로 채우는 전문의인 수석 군의 (medicus primus) 밑에 여러 군의들이 복무했고, 이들은 각자 내과, 외과, 약학 등의 방면으로 전문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외과 수술의들이 가장 높은 취급을 받았다. 이들 밑에는 medici ordinarii 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의무병과로, 전문 군위관들을 보조하도록 기초 의료 지식을 교육받은 일반 사병들이었다. 각 군단들마다 의무대가 편성되어 있었으며, 군단 휘하 각 코호트(Cohort, 대대)마다 군의와 의무병들이 배속되었다. 소규모 분견대나 보조병과(Auxiliarii)에도 의무병들이 '의무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는 제국 해군 함대(classis imperium)도 마찬가지여서 각 함선들마다 군의 한명과 보조 의료진이 배치되기 마련이었다. 이는 18세기까지 다시 보지 못할 모습이다.
또한, 치열한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부상자에게 일차적인 치료를 행한 후 후방으로 후송하는 임무를 맡은 capsarii 분대 (문자 그대로 '붕대 해주는 사람' 이란 뜻이다)들이 편성되어 있었다. 투구와 갑옷 등 무장을 갖춘 이 capsarii (ii 자체가 복수형이지만 명사 원형이 뭔지 헷갈리니까 그냥 편의상 '들'을 붙인다) 들은 들것을 장비하고 전장에 투입되어 부상자들의 부상 정도에 따라 우선 순위를 나눠 후송시켰으며, 그들을 통해 부상자들은 신속하게 전선 바로 뒤의 야전병원으로 옮겨져 군의관들의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전문적이고 신속한 치료를 통해 로마군이 얻을 수 있었던 (후방 야전병원까지 이송된) 부상자의 생존률은 무려 7할. 70퍼센트에 달했다. 오늘날 기준에서도 심각한 중상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었다. 플루타르코스는 클레안테스Cleanthes라는 한 군의관이 가슴-배가 칼에 너무 깊숙히 베인 나머지 내장이 쏟아져 나온 병사의 몸에 다시 내장들을 제 위치에 집어 넣고 출혈을 각종 도구와 약품으로 멈춘 다음에 상처 부위를 정밀하게 봉합해 완치시킨, 외과수술의 모범적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수술 과정에서는 마취제로 아편(opium)과 맨드레이크(mandrake)를 사용했다.

로마인들에게는 중세 기독교 사회와는 달리 인체해부에 대한 종교적 터부가 없었다. 그 덕에 로마의 의사들은 사망한 검투사들이나 처형당한 사형수들등의 시체들을 해부해보고 수술 실습을 할 수 있었으며 인체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근육과 혈관의 위치, 구조라던지 동맥의 위치 등등. 이러한 인체에 대한 이해는 여러가지 정밀 작업용 전문적 도구들과 함께 대단히 현대적인 외과수술을 가능케 했다. 화살촉이나 부러진 칼날 등의 이물질들을 빼내기 위한 집게라던지 상처 부위를 소독하거나 감염 부위를 퍼내기 위해 사용하는 숟갈, 피부나 근육 조직을 들어내는데 쓰는 집게에 언제나 날카롭게 갈아두는 메스, 출혈 쇼크를 막기 위해 혈관을 압박하는 도구 등등.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 칼날들을 갈아 끼우는 메스도 존재했다. 이러한 정밀 수술도구들은 현대 의학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들을 관리할 때 로마 의사들이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멸균 소독과 상처부위의 감염방지였다. 군의들은 환부의 감염 현상에 대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 환자에게 사용한 수술도구는 절대로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도구는 수술 후 불에 달구거나 열수에 씻어 소독했다. 의사 개인이 청결을 유지한 것은 물론이다. 수술 전과 수술 후에 상처 부위는 반드시 식초로 소독되었으며 붕대는 주기적으로 갈아 주었다.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가 없었기에 대체제로 벌꿀의 섭취를 권장했는데, 이게 또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현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벌꿀의 성분 중 천연항생성분인 프로폴리스가 강력한 살균, 항균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아주 올바른 조처였던 것이다. 이 모든, 현대에 와서는 당연하게 생각될 개념들이 제국 붕괴 이후 다 잊혀져 19세기까지도 의사란 자들이 '감염'이 뭐고 '소독'이 뭔지도 몰랐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야전수술 뿐만 아니라 각 중요 주둔지마다 설치되는 항구적인 육군병원(castra valetudinarium / 후기에는 그냥 'hospitium')들도 걸작이었다. 때로는 이 군 병원들이 민간에서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지경이었다. 군단 병영 사령관 직속의 병원장(optio valectudinari)이 관리하는 이 병원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환자들을 군사적인 체계성, 전문성으로 진료했다. 군단 병력의 약 10퍼센트 정도 (약 5백명)까지를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이 병원들은 수술실과 병실들을 따로 나눠 관리하고, 부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상당량의 의료물자(수술도구, 약초, 알콜 등)를 상비해 두도록 되어 있었다. 군 병원이 민간 병원보다 더 낫다는 건 바로 이런 점에서였다.
그 덕에 로마 군인들은 일반 민간인들보다 평균 수명이 근 10년 정도 길었다. 전장 등 험한 환경에서 싸우며 사는 군단병들인데도!
게다가 대단히 진보적인 군 의료 체계는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신규 의학지식이나 새로이 개선된 수술기술, 새로 발명된 수술도구등을 기존 체제에 편입시키고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부상병 치료율의 최대화, 비전투 손실률의 최소화'라는 목적에 효과적인 방법들은 받아들여졌고 그 목적에 방해가 되는 제한들은 가차없이 버려졌다. 로마 군의관과 의무대의 성공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모습과 부상자 치료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전반적 의학지식과 의료기술 수준이 당대 세계최고였다는 점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군 내 의무대 편제와 군의관들이 받은 합당한 대우와 존경, 그로 인해 생성된 전문성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였다.
이러한 로마군 의무대의 역사를 보면, 소위 '빨간약'과 무심함으로 악명 높은 한국군의 상황이 떠오르게 된다. 군에 있는 군의관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들어온 단기복무자들이 대부분이며 보통 3년 이상은 복무하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 작년에 국방부에서 나온 얘기가 "단기 군의관 위주의 진료체계가 국민불신을 가중시키기에, '우수한 군 의료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전문 군의관 양성기관인 국방의학원의 설립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였는데, 국군 내 장기 복무 군의관들의 진급이 대단히 빠른 이유가 군의관이 숫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던가, 의료물자가 없어 빨간약만 준다고 하는 악명(편견이 섞였다 할지라도)을 떠올리면 참으로 슬퍼지는 이야기다.
HistoryNet의 월간 전사잡지 Military History의 2011년 7월호에 실린 Richard A. Gabriel의 "The Best Medicine"과 Karen S. Metz의 A History of Military Medicine (1992) 을 참조해서 썼다.
그런데 이렇게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직후 치료를 받는 모습이, 끔찍해 보일진 몰라도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정말 몇 안되는 군인들만이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만 누릴 수 있었던 사치라면 어떨까. 주둔지에서 병이 들거나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민간요법 정도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치료라면? (그냥 내버려지지 않았을 경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가 유명해진 것도 열악한 군 의료 체제 때문이고, 불과 한세기 반 정도 전까지만 해도 전장의 군인들이 전문적인 치료나 수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마련이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 끔찍한 일이다. 3세기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귀족 지휘관들에 의해 단순 소모품 취급을 받았으며 부상자=사망자였을 (몸 안에 박힌 납을 빼내지 못해 오염으로 죽는다거나, 더러운 수술 도구로 봉합한 부위가 썩어들어간다거나 하는 건 그마나 치료를 받기라도 했다는 얘기다!) 일반 보병들의 처지는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그런데 수세기가 아니라 아예 1천 6백년 정도 더 과거로 가면 상황이 요상하게 달라진다.
서로마 제국 멸망으로 인해 많은 것이 무너졌다는 의미에서 유럽의 고대와 중세 사이의 기간을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더 이상은 그렇게 안부르고 후기 고대Late Antiquity라는 표현을 쓴다) 이 '암흑기'란 적어도 의료 부분에서 잘 들어맞는 단어가 된다. 이게 무슨 얘기인고 하니.

고대 로마. 나름 '전문화'가 되었다는 마리우스 군제개혁 이후의 로마 공화국군에서조차 군단 내 부상자/병자들에 대한 치료는 군단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같이 '병사를 아끼는' 사령관들은 사비를 들여 의사들을 고용, 군대와 함께 이동시키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그저 무관심하기 일쑤였다. 이 상황이 바뀐 것은 아우구스투스의 소위 '원수정'이 성립된 이후였다.
기원전 30년 경, 아우구스투스는 병사들의 전투력과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전문적인 의무부대를 창설한다. 이들이 그 이후로 제국 멸망 때까지 지속될 전문적인 군 의료 체제/인력의 시작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능력있는 의사들을 군의관으로 입대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혜택을 내걸었다. 입대하는 의사들에게는 자동적으로 기사 작위(dignitas equestris)가 수여되며, 완전한 로마 시민권이 보장되고, 은퇴 후에는 상당량의 연금과 면세 혜택이 주어졌다. 이렇게 해서 모인 제국 초기 군의관들은 그리스인들로, 그리스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진료법/수술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이러한 실증성/전문성은 곧 제국군 의무대의 특징이 된다. 나중에 가면 로마군에서 자체적으로 전문 군의학원을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의학 서적들을 출판하는데에 이르렀으며, 진료/수술 방법을 체계화 시키고 통일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이 확립될 때마다 빠른 개정을 통해 포함시키는 훌륭한 전문성을 보여주게 된다.
로마 제국군 의무대의 주 목적은 (현대적 군대의 의무대와 마찬가지로) 비전투 손실률을 최소화 하고, 부상자의 전선 복귀율을 최대화하는 것이였다. 이는 단순히 치료 뿐 아니라 전반적 군 복무 환경의 개선에도 영향을 끼쳤다. 군의관들은 병사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주둔지에서의 하수처리시설 정비, 깨끗한 물의 지속적 공급, 야채와 고기, 빵과 과일을 골고루 조합한 다양한 식사, 정기적 건강검진, 막사에서의 모기장 설치, 사망자의 화장, 그리고 병사들 개개인의 청결 유지등을 도입하고 강제했다.

[화살촉을 빼내는 군의]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나? 서기 1세기 경에 이르면 제국의 모든 의사들은 군의관이 될 게 아니어도 제국군 군의학원에서 가르치는 군의관 훈련과정을 수료해야 할 정도로 군의관의 권위가 커졌으며, 1개 군단에서 세번째로 높은 지휘권자 (군단장, 기병대장 다음으로)가 군의관 출신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직위를 군단 병영 사령관, praefectus castrorum 이라고 한다.) 또한 대단히 전문화가 된 이 의무대는 단순히 의사 몇명이 군단을 따라 다니는 정도가 아니었다. 보통 최대 복무기간인 25년을 만기로 채우는 전문의인 수석 군의 (medicus primus) 밑에 여러 군의들이 복무했고, 이들은 각자 내과, 외과, 약학 등의 방면으로 전문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외과 수술의들이 가장 높은 취급을 받았다. 이들 밑에는 medici ordinarii 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의무병과로, 전문 군위관들을 보조하도록 기초 의료 지식을 교육받은 일반 사병들이었다. 각 군단들마다 의무대가 편성되어 있었으며, 군단 휘하 각 코호트(Cohort, 대대)마다 군의와 의무병들이 배속되었다. 소규모 분견대나 보조병과(Auxiliarii)에도 의무병들이 '의무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는 제국 해군 함대(classis imperium)도 마찬가지여서 각 함선들마다 군의 한명과 보조 의료진이 배치되기 마련이었다. 이는 18세기까지 다시 보지 못할 모습이다.
또한, 치열한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부상자에게 일차적인 치료를 행한 후 후방으로 후송하는 임무를 맡은 capsarii 분대 (문자 그대로 '붕대 해주는 사람' 이란 뜻이다)들이 편성되어 있었다. 투구와 갑옷 등 무장을 갖춘 이 capsarii (ii 자체가 복수형이지만 명사 원형이 뭔지 헷갈리니까 그냥 편의상 '들'을 붙인다) 들은 들것을 장비하고 전장에 투입되어 부상자들의 부상 정도에 따라 우선 순위를 나눠 후송시켰으며, 그들을 통해 부상자들은 신속하게 전선 바로 뒤의 야전병원으로 옮겨져 군의관들의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전문적이고 신속한 치료를 통해 로마군이 얻을 수 있었던 (후방 야전병원까지 이송된) 부상자의 생존률은 무려 7할. 70퍼센트에 달했다. 오늘날 기준에서도 심각한 중상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었다. 플루타르코스는 클레안테스Cleanthes라는 한 군의관이 가슴-배가 칼에 너무 깊숙히 베인 나머지 내장이 쏟아져 나온 병사의 몸에 다시 내장들을 제 위치에 집어 넣고 출혈을 각종 도구와 약품으로 멈춘 다음에 상처 부위를 정밀하게 봉합해 완치시킨, 외과수술의 모범적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수술 과정에서는 마취제로 아편(opium)과 맨드레이크(mandrake)를 사용했다.

['트라야누스의 기둥'에 묘사된 로마군 군의관의 야전수술 장면]
로마인들에게는 중세 기독교 사회와는 달리 인체해부에 대한 종교적 터부가 없었다. 그 덕에 로마의 의사들은 사망한 검투사들이나 처형당한 사형수들등의 시체들을 해부해보고 수술 실습을 할 수 있었으며 인체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근육과 혈관의 위치, 구조라던지 동맥의 위치 등등. 이러한 인체에 대한 이해는 여러가지 정밀 작업용 전문적 도구들과 함께 대단히 현대적인 외과수술을 가능케 했다. 화살촉이나 부러진 칼날 등의 이물질들을 빼내기 위한 집게라던지 상처 부위를 소독하거나 감염 부위를 퍼내기 위해 사용하는 숟갈, 피부나 근육 조직을 들어내는데 쓰는 집게에 언제나 날카롭게 갈아두는 메스, 출혈 쇼크를 막기 위해 혈관을 압박하는 도구 등등.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 칼날들을 갈아 끼우는 메스도 존재했다. 이러한 정밀 수술도구들은 현대 의학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제 20 '발레리아 빅트릭스' 군단 주둔지에서 발굴된 로마 군의들의 수술도구와 그 레플리카]
그리고 이러한 도구들을 관리할 때 로마 의사들이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멸균 소독과 상처부위의 감염방지였다. 군의들은 환부의 감염 현상에 대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 환자에게 사용한 수술도구는 절대로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도구는 수술 후 불에 달구거나 열수에 씻어 소독했다. 의사 개인이 청결을 유지한 것은 물론이다. 수술 전과 수술 후에 상처 부위는 반드시 식초로 소독되었으며 붕대는 주기적으로 갈아 주었다.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가 없었기에 대체제로 벌꿀의 섭취를 권장했는데, 이게 또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현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벌꿀의 성분 중 천연항생성분인 프로폴리스가 강력한 살균, 항균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아주 올바른 조처였던 것이다. 이 모든, 현대에 와서는 당연하게 생각될 개념들이 제국 붕괴 이후 다 잊혀져 19세기까지도 의사란 자들이 '감염'이 뭐고 '소독'이 뭔지도 몰랐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야전수술 뿐만 아니라 각 중요 주둔지마다 설치되는 항구적인 육군병원(castra valetudinarium / 후기에는 그냥 'hospitium')들도 걸작이었다. 때로는 이 군 병원들이 민간에서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지경이었다. 군단 병영 사령관 직속의 병원장(optio valectudinari)이 관리하는 이 병원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환자들을 군사적인 체계성, 전문성으로 진료했다. 군단 병력의 약 10퍼센트 정도 (약 5백명)까지를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이 병원들은 수술실과 병실들을 따로 나눠 관리하고, 부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상당량의 의료물자(수술도구, 약초, 알콜 등)를 상비해 두도록 되어 있었다. 군 병원이 민간 병원보다 더 낫다는 건 바로 이런 점에서였다.
그 덕에 로마 군인들은 일반 민간인들보다 평균 수명이 근 10년 정도 길었다. 전장 등 험한 환경에서 싸우며 사는 군단병들인데도!
게다가 대단히 진보적인 군 의료 체계는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신규 의학지식이나 새로이 개선된 수술기술, 새로 발명된 수술도구등을 기존 체제에 편입시키고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부상병 치료율의 최대화, 비전투 손실률의 최소화'라는 목적에 효과적인 방법들은 받아들여졌고 그 목적에 방해가 되는 제한들은 가차없이 버려졌다. 로마 군의관과 의무대의 성공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모습과 부상자 치료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전반적 의학지식과 의료기술 수준이 당대 세계최고였다는 점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군 내 의무대 편제와 군의관들이 받은 합당한 대우와 존경, 그로 인해 생성된 전문성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였다.
이러한 로마군 의무대의 역사를 보면, 소위 '빨간약'과 무심함으로 악명 높은 한국군의 상황이 떠오르게 된다. 군에 있는 군의관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들어온 단기복무자들이 대부분이며 보통 3년 이상은 복무하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 작년에 국방부에서 나온 얘기가 "단기 군의관 위주의 진료체계가 국민불신을 가중시키기에, '우수한 군 의료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전문 군의관 양성기관인 국방의학원의 설립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였는데, 국군 내 장기 복무 군의관들의 진급이 대단히 빠른 이유가 군의관이 숫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던가, 의료물자가 없어 빨간약만 준다고 하는 악명(편견이 섞였다 할지라도)을 떠올리면 참으로 슬퍼지는 이야기다.
HistoryNet의 월간 전사잡지 Military History의 2011년 7월호에 실린 Richard A. Gabriel의 "The Best Medicine"과 Karen S. Metz의 A History of Military Medicine (1992) 을 참조해서 썼다.
덧글
"문화"는 후퇴할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너무나도 좋은 예군요.
그럼 약제계던가, 그 친구들이 가라로 서류 매워서 떼우고...
그렇게 한두명의 비양심과 까이지 않기 위한 가라가 이어지면, 어느샌가 재고는 100으로 유지되는데 실재고는 0... 그럼 남는건 레알 빨간약 온리.
고대 의학을 물로 보면 곤란합니다.
잉카에서 발견된 두개골 수술 해골도 석기 시대 유럽(불가리아)에서 발견된 사례가 있으니까요.(그것도 완치된...)
재밌는게 중세 사제 양반들이 머리 아픈 병자의 이마에 십자가로 칼집내고 소금 뿌린 것과 비슷하게, 유럽의 석기 시대에도 머리를 십자로 지진 흔적이 있는 유골이 나왔다는 겁니다.(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른답니다.)
1600년 전인데도
부상병 생존율이 7할에 평균수명은 10년이 더 길어
이건 무슨...
이건 뭐 거의 오파츠적인 의료기술이었군요.
저런 기술을 거의 괴멸시킨 범인을 기독교라고 봐도 될까요?
무시무시한 기독교 빠와...
화학과 철학의 발달은 로마시대가 지나 이슬람 제국 시절에 발전했습니다.
뭐 그전에 기독교란 게 나타나지 않았어야 했다는 전제가 있겠지만..
이 포스트에서 로마군의 의료 체계가 중세에 비해 아주 뛰어나다니. 근대와 맞멎을 정도로 아주 수준이 높기까지 해서 놀라기 그지없습니다. 의료 체계에서도 로마 제국이 얼마나 튼튼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개독교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의학 기술이 3200년대정도는 되었을걸 생각하니
이가 북북 갈리는군요
초기 기독교 논리대로라면 소아마비 환자를 회복시키고
온갖 기적?을 보이죠.
현재 한국에서도 부흥회에서 소아마비나 장님,귀머거리등을
회복시키죠.
자료보면 거의 액팅에 가까운 절규와 퍼포먼스를 신자들이
보이는 광기적인 작태를 보여주는데 지옥은 항상 가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독이 식민지 사업이나 교회확장용으로 헌금 징수에 열을
올리지 않았으면 욕은 덜 먹었을 텐데 항상 현실은 OTL이죠.
가까운 왜국에서는 암울했던 시절에는 좀 보급이 되었는데
오히려 개화하고 서양문물을 급속 수입한 후에는 오히려
쇠퇴하는 걸 보면 왕조체제에서 암울할 때나 퍼질 수 있는
종교라고 생각됩니다.
뭐 이슬람이나 불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예수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겠죠.
한국이야 30년 정도는 개독의 광풍에 묵묵한 외면으로 맞서야
될 것 같습니다.
아참 먹사 딸내미는 피하는게 좋습니다.
굉장히 스펙을 밝히더군요.
종교적 열정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동시에 원하더군요.
마취와 X-ray, 아스피린과 페니실린 정도만 있었다면 20세기 초중반 군의관도 능가할 기센데요?
그 한 예로, 그리스/로마시절때의 인체묘사는 정말 엄청난 수준인데, 그게 중세로 오면
'헐 그거 뭐임? 먹는거임? 우걱우걱'
이 꼬라지로 전락하는 걸 쉽게 발견하실겁니다.
여튼 놀랍네요. 아우구스투스가 단순히 돈으로 상비군을 잘 유지시킨게 아니었습니다.
비록 절반이 망하기는 했지만.
역시 한 제국이 그렇게 크게 성장했던 이유가 있군요'ㅅ'
첨 자대배치받고 선임병들 삥땅치고 가라친 재고품 복구하느라 1년정도 걸렸긴한데 왠만한 약은 다있었거든요^^;;
로마군 군의관은 마취제가 있었으면 썼겠지만,
한국군 군의관은 담당의가 퇴근했으므로 마취제가 있어도 안썼습니다.
제 고참은 성희롱도 당했고 종양때문에 입실도 했다던데
제대하고 사회에서 치료받을래 아니면 군에서 수술
받을래 하자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그냥 군에서 수술 받았다는데
성공한게 다행이군요.
(높으신 분들의 사고방식을 볼 때 말이죠.)
그외에 병사를 긴급후송하고 복귀하던 헬기가 산에 추락하여 8명의 군인들이 사망했던 적도 있었고 말입니다.
그외 아프간과 이라크전을 통해 부각된 PTSD에 대한 어떠한 대처도 없다는것도 문제고 말입니다.(GP사고및 천안함 사건 당시 생존자 상당수는 PTSD 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나 군은 어떠한 조치를 취한바 없습니다.)
국방개혁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 오류가 있는게,
근대 이전의 평균수명을 깎아먹은 것은 높은 신생아 사망률입니다.
군인이 되었다는 건 이미 신생아 단계를 통과한 생존자들이므로
민간인 평균수명보다는 높다고 해도 실제로 성인끼리만 비교하면 비슷하다고 봐야지요,
그래도 군인 평균수명 = 민간인 평균수명만 해도 국지전이 일상이었던 당시엔 ㅎㄷㄷ한 상황이지만요
중국에서도 로마군에서 시행되던 외과시술이 중국의 군대 내에서도 시행된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일반인이 자해목적으로 할복한것을 어의가 치료한 사례도 발견이 되구요.
단지 지금 한의사들이 그렇지 않고있을뿐이지..
재미있네요.
암흑기의 유럽은 대체 뭘 이어받은거지. --;
"제국이 이 시대에 타국보다 월등히 앞서 있던 것 중 하나는 야전의료기술이었다. 원래 의료기술은 고전 그리스 시절로 올라가는데, 군의는 이 시대의 어느 의사들보다도 실력이 좋으며, 아마도 군사 활동의 특성 상 수요도 많았을 것이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 이들의 기술은 필수적이었다. 데스포타토이나 크리반타이라 불리던 응급처치원들은 전장에서 쓰러진 병사들에게 응급처치를 시킨 뒤, 대열 후방에 있는 야전 진료소로 보낸다. 진료소에는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남자)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데스포타토이는 말이나 노새, 당나귀 따위를 타고 부상자를 옮기는데, 모든 의료진은 비무장 상태였다. 로마(비잔티움)인 의사들은 상처를 꿰매거나 골절에 능숙했으며, 힘줄이나 인대, 관절이 손상을 입었을 때는 절개수술도 할 수 있었다. 또한 로마의 의사들은 복부의 상처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 물론 다른 상처부위의 처리에 비해선 훨씬 조악하고 비효율적이었다 -. 아마도 갑옷 입은 병사들이 부상을 입은 경우, 일단 갑옷을 벗긴 후 전열 뒤로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치료와 운송을 쉽게 할 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지 않은 병사는 이를 입고 싸울 수 있다."
"설령 전투가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더라도, 제국군은 이 경우 사상자를 줄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보병 대열 약 100m 후방에서는 야전병원이 긴급하게 설립된다. 여기서 의사와 간호사, 긴급구조대들이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긴급구조대는 운송용 노새에 걸을 수 없는 병사를 태워 후방으로 보낸다. (중략) 이때 의사들은 응급처치를 한 뒤 이들을 전열로 되돌려 보낸다. 의료 행위는 당장의 효과는 없지만 전투가 길어진다면 점점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제국의 적은 대개 부상자나 사망자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중세 유럽의 전장에서 사상자가 전체의 15%~20%에 달하는 경우 군대가 거의 전멸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의 (동)로마군에게 이 임계점은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요구로 했다. 그 이유로는 역시 부상자가 회복되는 비율이 다른 군대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는 네이버 부흥카페의 게이볼그 님이 번역하신 Ospery Warrior 118 - Byzantine Infantryman 900 - 1204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윗분 말씀대로 마취제, X-Ray 등의 고급 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현대 의학에 버금가는 생존률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면, 저들에게 현대 의학의 기술적 혜택(이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지만... 워낙 개독이 소실시킨게 많아서...) 만 주어졌더라면 괴멸적 타격으로 전선 붕괴같은 상황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가히 먼치킨적 부대가 되었겠군요...
그리고, 사기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을거라 생각됩니다.
'괜찮다! 비록 내장 좀 쏟았지만, 응급조치 받으면 살 수 있어!(지독하게 아프겠지만)'
살짝 팔다리 베인것만으로도 곪아터져 뒤지는 -_-;; 적국에 비한다면야 레알 마르스 군신님께서 자신들을 굽어 살펴주신다고 믿고 우라 돌격이라도 할 기세네요 저건 우와...
아, 아무리 생각해도 개독은 까야 해요. 전 인류의 적이에요 이건 완전히...아...
미생물 개념이 없던 시절에 '경험만으로' 감염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게 참 대단하네요.
능력있는 의사들을 군의관으로 모으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다는 부분이 현재의 우리나라와 비교되면서 안타깝습니다. 군의관도 직업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는 길은 있지만 사회 나와서 의사 하는 편이 여러모로 훨씬 나은지라OTL
이미지로 인상 깊었는데 거기에 한가지 추가해야 겠네요 '삽과 망치 그리고 메스'로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의료서비스의 밀도의 지표로 종종 인용되는 의사 1인당 담당환자의 수가, 로마군단에는 얼마만큼 적용되었는지가 궁금해지는군요. 군단주둔지마다 군 병원이 있었다면, 결국 그 병원의 담당의 확보 숫자가 1인당 담당환자의 비율을 유추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 ㄷㄷ
과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군요.
정말이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고대 인류문명의 한 모습 입니다.
이 소중한 의료기술들이 중세기에 다 잊혀지다니...
후기고대가 아니라 암흑기라는게 더 알맞는 말 같습니다.
함선마다 선의를 배치하는 것이 거의 1600년 후에야 부활하는군요.
기독교가 문제인게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비이성이 지배한다는 것이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2. 마지막에 인용하신 보고서에서 언급된 국방의학원은 의료계의 반발로 법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그래도 군 상층부가 장기 복무를 하는 의료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건 엄청난 발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로마가 망하고 나서 로마의 세제와 행정제도가 붕괴해서 봉건화되는 바람에 의사나 기술자들을 집단적으로 운영할 재원이 없어서이기도 했습니다.
근대국가가 나오면서 다시 이런 전문화 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런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시스템과 자금은 기술과 과학발전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환자가 외부의 소음에서 격리될 수 있도록 설비한 것은 물론이고,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이 산책할 수 있게 안뜰도 만들었습니다.
로마군의 사기가 높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던거죠.
그리고 위에 분들이 기독교 언급을 많이 하셔서 한가지 덧붙이자면,
고대 로마 제국의 정신은 관용이었습니다. 모든 신과 문화를 인정하고
그것을 로마제국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거죠. 지금도 로마에 남아있는
판테온(만신전)은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이런 로마이기에 그 광대한 제국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거죠. 이 로마의 정신에 어긋나는 단 하나의 종교가 유대교였습니다.
자기들의 신만이 진리였기에 로마제국에 수시로 반기를 들었죠.
그리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말고는 전부 이단이기에 모든 신들이 공존하는 로마의 지배를
거부한 것이죠. 그리고 로마제국 말기에 기독교도가 득세하면서
로마가 추구해온 관용의 정신은 말살당합니다. 신전이 파괴되고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제의가 금지되고, 아름다운 신상들이 무자비하게 파괴된
것이죠. 그렇게 중세가 시작됩니다. 관용이 없기에 자기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십자군의 시대죠. 기독교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저런 군 의료체계가 거의 2000년 전에 있었다는게 후덜덜 합니다. 근데 한국군 군 의료체계 이야기를 들어보면...OTL
충격과 공포의 문명이군요.
근대 로마 의학기술이 나가리 된건 기독교 때문은 아닐탠대...
지금이 암흑기라면 그때 사람들은 종말기였을 겁니다.
이 내용은 참으로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로마제국의 의술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도 없는데 좋은 공부 되었습니다.
19세기의 의사들이 과거의 의사들보다 못했다는건 엄청난 충격이네요;;
진보하지 못할 망정 퇴보하다니;
정말이지 양놈들 기반은 로마에서 시작해서 로마로 귀결되는것 같습니다;;
펌질 좀 하겠습니다. ㅋㅋ
출처는 확실히 남기겠습니다.
펌질 좀 하겠습니다. ㅋㅋ
출처는 확실히 남기겠습니다.
http://cafe.daum.net/Europa/3L0P/1545
여기로 퍼갔습니다 ^^
ㅅ 세상에나
로마가 하지 못한 일은 대체 뭐죠 ㅠ
상당히 주목 할 만한 재미있는 부분 입니다. 제가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 좀 있는데 그것과 연관되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http://ktmd0c.egloos.com/1975017
동로마는 1000년 정도 갔으니 의료 기술도 같이 전달됐다면
기록이 있을텐데.
출처가 궁금합니다.
로마가 야만족들에게 무너지고 무지한 게르만인들이 유럽을 지배하게된것이 문제이죠.
만약 로마가 기독교국가로 계속 존재했었어도 발전은 계속되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