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진사의 업적

1903년 11월 어느날, 한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 또는 그냥 ‘인디언’ 한명이 시애틀의 어느 사진사의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그 인디언은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가진 네즈 페르세 부족의 추장 ‘죠셉Joesph’이였다. 추장 죠셉은 오레곤 주에 거주하던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백인들에게 전술과 용기를 가지고 오래 저항해 왔던 전설적인 투사였다. 허나 인디언 전쟁은 이미 끝난지 오래였고 늙은 추장의 시애틀 방문은 네즈 페르세 부족이 오레곤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청원을 위해서였다. 그 추장이 굳이 사진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당연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인디언들의 사진들을 찍어 모은다는 백인 사진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사와 추장은 대화를 통해 금새 친해졌고, 사진사는 늙은 추장의 꺽이지 않은 패기와 자존심, 그리고 지성에 감명받아 나중에 “세상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찬사까지 아끼지 않았다.


[추장 죠셉]


사진사가 붉은 나폴레옹과 만났을 때는 이미 대담하고 야심찬 거대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사진사의 이름은 36세의 에드워드 S. 커티스Edward S. Curtis, 1868~1952였고, 그 프로젝트란 알라스카에서부터 모하비 사막에 이르기까지 미국 서부에 존재하는 모든 주요 인디언 부족들의 얼굴, 생활상과 전통을 전하는 거대한 사진집 시리즈의 제작이었다.


[에드워드 커티스]





커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오만한 백인이 패자를 기록하는 것도, 패자에게 동정을 보내며 ‘고귀한 야만인’을 추켜세워 올리는 것도 아닌, 순수한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인디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커티스는 인디언들을 존중하며 열린 태도로 그들의 문화, 종교, 전통생활을 배우는데 열심이었고, 그런 그를 인디언들도 존중하며 신뢰, 그를 ‘그림자 사냥꾼’이라고 불렀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제 1권이 1906년에 출판된 이래 총 30년의 시간과 사진사의 건강, 재산, 결혼생활을 대가로 완성되었다. 그 결과가 “The North American Indian”이란 제목의, 1천 5백장의 사진들을 담은 20권짜리 사진집이다. 30년간 커티스는 80개 인디언 부족들을 찍은 4만장의 사진을 남겼고 사진들과 함께 전통음식, 거주공간, 의복, 놀이문화, 주술의식, 장례문화, 언어 등 그들의 생활상에 대한 상세하고 방대한 설명 기록을 더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음성 녹음도 엄청난 양을 남겼다. “The North American Indian”은 그 결과 서부 인디언 생활상과 문화에 대한 유일무이한 양과 질을 갖춘 사료로 남게 되었다.

그가 남긴 기록들이 현존하는 유일한 기록들인 경우도 태반일 정도로 커티스의 기록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 뜻있는 사진가가 자신의 인생을 바쳐가며 노력한 작업 덕분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문화와 역사의 기록이 보존되어 후세에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절로 감탄이 나오게 된다.


그 뜻에 존경을 표한 사람들 중에는 대통령도 있었다. 그 대통령이 쓴 제 1권의 서문을 번역해 봤다.

"(전략) 지금껏 존재해 왔던 인디언의 모습은 이제 사라져 버릴 처지에 있다. 인디언이 살아왔던 세상의 모습은 이미 수세기 전 과거에 사라져버려 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을 지경이다. 그 세상에 대한 투명하고 진실된 기록을 보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일 것이다. (중략) 사람들은 그러한 기록들의 일부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자질들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는데 있어 특출난 성공을 거두어, 그 누구도 여지껏 이뤄내지 못했던, 그리고 그 누구도 앞으로 해낼 수 없을 일을 해냈다. 그는 장롱 속이 아니라 문 밖에 나가 일하는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기념하고자 하는 야생에 둘러싸인 현장에서 일하며 관찰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지닌 긴밀한 관찰가다. 그는 산에서, 들판에서 수많은 부족들과 가깝게 살아갔다. 그는 그들이 사냥하고, 여행하고, 여행하는 동안이나 야영지에서 행하는 여러 모습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약과 주술사와 추장과 전사들과 소년 소녀들을 이해한다. 그는 그들의 활기찬 외양뿐 아니라 대부분의 백인들이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영 접하지 못할 기이한 영혼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일면들을 포착해낸다. 커티스 씨는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두에게 진정하고 크나큰 봉사를 하는 것이다."

1906년 10월 1일, 씨오도어 루즈벨트.




그리고 커티스가 남긴 사진들.




덧글

  • 초록불 2011/05/16 15:42 #

    잘 보았습니다. 대단하군요.
  • Bluegazer 2011/05/16 15:43 #

    남자를 보았습니다...

    학문이 아니라 아집으로 싸우려 드는 자칭 역사학자의 분탕질에서는 낌새도 찾아볼 수 없는 감동이 느껴지네요
  • 월광토끼 2011/05/17 15:21 #

    그분 얘기라면, 아, 난 저런 학자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반면교사가 되어주고 계시니 어떤 점에서는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아르니엘 2011/05/16 15:49 #

    오오, 이것이 아메리칸 근성입니까. 마치 도끼 한자루 들고 수만그루의 나무를 잘라냈다던 전설의 폴 배니언(이름 맞나)과도 같은 근성이군요.
  • 월광토끼 2011/05/17 06:22 #

    미쿡 살람덜 발음 들어보면 '펄 번연' 같긴 하지만 뭐 그게 그거 .. [.]
  • shaind 2011/05/16 15:51 #

    기록에 대한 열정은 후대에 큰 혜택을 주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훌륭한 조상들을 둔 셈이겠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1/05/16 15:52 #

    역시 양덕의 힘!!
  • 진성당거사 2011/05/16 16:02 #

    이 사람의 책 전질을 예전에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저와 몇 년 째 교분이 있는 어느 교수임 댁에서 본 적이 있지요. 정말 대단하더군요. 결정적으로 80년 넘은 책인데도, 사진의 인쇄 수준이 오늘날의 여느 화보집 못지않게 깔끔하고 정교한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에도 일제강점기에 석남 송석하 선생 같은 분들이 모은 자료들이 상당량 있었다는데 그 모든 것들이 다 산일되고 분실되고 폐기된 것은 참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 월광토끼 2011/05/17 06:24 #

    최고로 비싼 종이와 인쇄 방식만을 고집했다고 합디다. (그래서 재정적 부담이 더 커졌고) 현재 그 전질은 모두 e-book화 되어 인터넷에 올라와 누구든지 읽어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한국 사정에서는 사료와 인쇄매체의 보전이라는 부분에 안타까운 사례들이 참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 네리아리 2011/05/16 16:11 #

    정말 아주 잘 찍었군요. 예술작품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멋지군요. +ㅅ+)b
  • 怪人 2011/05/16 16:17 #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개척시대 당시 백인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박제한다> 라고 여겨지는건 너무 비관적이겠지요. (...)
  • 월광토끼 2011/05/17 06:24 #

    실제로 그런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그렇게 폄하하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업적입니다.
  • 怪人 2011/05/17 08:47 #

    확실히. (정확한) 사료 없이는 분석도 비판도 반성도 없을테니까요. '')
  • 야스페르츠 2011/05/16 16:23 #

    훌륭한 사진들이네요. 이렇게 뜻 있는 일에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
  • 행인1 2011/05/16 16:29 #

    정말 방대하고 귀중한 기록이로군요. 현대 연구자들에게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듯 합니다.
  • 네비아찌 2011/05/16 16:40 #

    참으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저 찬탄만을...
  • Allenait 2011/05/16 17:10 #

    대단합니다. 정말. 한 세상을 사진에 기록했군요
  • 시스 2011/05/16 17:43 #

    개인적으로 사진을 순간의 미학이라고 생각하는데 감탄이 나오는 사진들이네요^^
  • MessageOnly 2011/05/16 17:43 #

    '그림자 사냥꾼' 이라는 이름이 멋지게 다가오네요.
  • 월광토끼 2011/05/17 06:26 #

    원문으로는 Shadow Catcher, 라고 합디다.
  • 효우도 2011/05/16 17:44 #

    참 대단한 기록이네요.
  • 한단인 2011/05/16 17:55 #

    정말 일생의 역작이군요.
  • Warfare Archaeology 2011/05/16 18:13 #

    엄청난 인물이네요. 닉네임이 참 멋있습니다. 그림자 사냥꾼...흐음.
  • 월광토끼 2011/05/17 06:26 #

    사실 아주 알맞은 닉네임이기도 하지요.
  • ELINT 2011/05/16 18:37 #

    그림자 사냥꾼, 멋진 이름이네요. 일생의 업적과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인디언들의 작명센스!
  • 월광토끼 2011/05/17 06:27 #

    Shadow Catcher. 그러나 그가 잡은 건 단순한 '그림자'가 아닌 그 상狀 자체였다는데서 더 멋지죠
  • Mecatama 2011/05/16 19:34 #

    曰. 훌륭하군요. 인디언들이 붙여준 사냥꾼도 아주 멋지고.
  • 누군가의친구 2011/05/16 19:38 #

    사진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겨집니다. 정말 귀중한 역작입니다.
  • 대한민국 친위대 2011/05/16 19:55 #

    후덜덜 합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입니다.
  • ..모닝모닝 2011/05/16 21:25 # 삭제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포스있네요
  • 데빈 2011/05/16 22:45 #

    우와 읽으면서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일 하신 분이네요.
  • 萬古獨龍 2011/05/17 01:06 #

    사나이로군요... 덕분에 후대의 우리는 그저 굽신굽신.
  • 모에시아 총독 2011/05/17 02:18 #

    한 사람의 고귀한 선행이 후대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록을 남겨 주었네요.
  • kyung 2011/05/17 13:53 #

    티피앞에 앉아있는 원주민들 사진이 아름다워요. 그리고 사진속 북미원주민들의 표정이 편안해보여요. 너를 믿으니 기꺼이 찍혀주겠다고 얘기하는듯한 표정들이에요.
  • 인형사 2011/05/17 16:19 #

    미국을 방문한 키플링이 테오도르 루즈벨트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 인디안 유물들을 보고 감상을 말한 것이 있지요.

    "I never got over the wonder of a people who having extirpated the aboriginals of the continent more completely than any modern race had ever done, honestly believe that they were a godly little New England community setting examples to brutal mankind."

    커티스의 작업은 J. P. Morgan의 재정지원과 요청에 의해 이루진 것이더군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치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에서 대변하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그 뒤에 어른거리고 있네요.
  • 월광토끼 2011/05/18 10:58 #

    저도 모건 얘기는 나중에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저작권도 뺏기고 모건 측에서 별 좋은 대접도 못받은 모양이더군요.
    돈이 없어서 자기 필름들에 대한 저작권을 마구 팔아 넘겨야 하는 처지에 전락하고...


    키플링은 아마 작금의 미국인들을 봐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아직도 학교들에서는 땡스기빙 시즌 때마다 '인디언과 필그림들이 하하호호 손잡고 춤추고 파티'하는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ㄱ-
  • 2011/05/19 10:03 #

    이런 사람이 있었군요ㅠㅠ 굉장하네요...존경스럽습니다
  • 토로록알밥 2011/05/20 12:54 # 삭제

    순수한 '열정'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자신의 피사체가 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또한
    그의 사진을 빛나게 하는 요소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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