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QR LEGIO IX HISPANA 로마 제 9 군단의 미스테리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보존하고 연구하는 영국의 고대사 연구 분야에서,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장 자극하는 대중적인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제 9군단의 갑작스러운 실종이다.

로마 제국군 제 9 군단. 또는 LEGIO IX HISPANA. 이 군단은 기원전 65년경 그나에우스 폼페이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원정을 갔을 당시 창설된 4개 군단 중 하나였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히스파냐 총독직을 수행할 때 지휘하였으며, 그를 따라 갈리아 평정에도 참전한 부대로, 기원전 49년 경에는 다시 이베리아 방면에 배치되어 반란을 평정하며 부대 별칭 '히스파니엔시스Hispaniensis'를 얻었다. 이 부대는 카이사르가 일으킨 공화국 내전기에 다시 호출되어 참전, 파르살루스 전투 등에서 싸웠고, 카이사르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해산되어 그 전역병들은 피케눔 지방 (오늘날 이탈리아 동북부의 마르케 주에 해당됨)에 정착했다. 그러나 부대 해산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재개된 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전역병들을 호출, 부대를 재편성하였고 제 3 내전 내내 옥타비아누스 휘하에서 싸웠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가 된 후에는 다시 군단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히스파냐(이베리아)에 배치되어 지역 원주민들을 평정하는데 투입되었다.

그리고 나서 제 9 히스파나 군단은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할 무렵에 다뉴브 방어선 서단 (판노니아 지방. 오늘날의 헝가리 서부)에 배치되었다가, 서기 43년경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브리타니아 침공에 다른 3개 군단들과 (제 2 아우구스타, 제 14 게미나, 제 20 발레리아 빅트릭스) 함께 동원되었고, 브리타니아가 성공적으로 점령된 후에는 그곳에 계속 주둔하게 된다.

제 9 군단은 서기 50년대 대부분을 베누티우스라는 족장이 이끄는 켈트족의 한 분파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데 보내는데, 기원전 60년 경에는 브리톤 족 여왕인 보우디카가 일으킨 대규모 반란 사건 때 오늘날의 에섹스 지방에서 반란군의 포위 공격에 의해 군단장 케리알리스가 지휘하는 제 1 코호르트 (Cohort; 대대)거의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타키투스가 기록하고 있는 이 사건에서 제 9 군단의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방어진지 안에서 몰살 당했고, 지휘관과 일부 기병 병력만이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에 보우디카의 반란은 다른 군단들에 의해 진압되었고, 제 9군단은 다시 병력이 충원되어 재건될 수 있었다. 제 9 군단은 계속 브리타니아에 주둔했는데, 이들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서기 108년 오늘날의 요크 인근의 요새에 남겨졌다. 요새 건설을 한 부대가 제 9 군단이라는 기록이 초석에 남은 것인데, 여기서 그 유명한 '미스테리'가 탄생한다. 그 108년 이후부터 제 9 군단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의문스럽게도 역사에서 증발해 버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였던 서기 2세기 후반 경에 정리된 로마 제국 내 단위 부대 목록에는 제 9 군단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숫자 9를 쓰는 군단은 편성되지 않았다. 결국 이에 대해 남는 유일한 설명은 바로 제 9 군단이 어딘가의 전투에서 완전히 전멸당해 흑역사로 남았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언제 어디서였냐는 것이다.

위 제 9 군단의 브리타니아 주둔 기록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브리타니아는 정복된 이후에도 그곳의 토착 민족에 의한 반란이나 북방에 존재하던 야만족들의 습격 등으로 인해 치안이 계속 불안정하였고 이는 서기 122년 경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과 그로 시작된 '하드리안스 월' - 그 유명한 하드리아누스의 방벽 (라틴어로는 Vallum Aelium 이였다. 하드리안의 양아들이었던 아엘리우스가 세운 성곽, 이라는 뜻이다.)의 건설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제 9 군단이 픽트 족 등 브리타니아 북방의 야만족들에게 매복 습격 당해 아예 몰살당해 없어졌다는 이론이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져, 먼 북방의 안개 낀 숲 속에서 야만족들에게 공격 당하며 전멸하는 로마 제국군이라는 테마 아래 영국인들에 의해 여러차례 재생산되고 미화되고 상상되어지는 소재가 되었다.

그 결과가 "센츄리온 (백인대장)"이나 "이글" 같은, 제 9 군단의 전멸을 소재로 하는 영국산 영화들이다.

[전멸을 피해 살아남은 백인대장이 적대지역을 탈출하려 한다]

[군단의 전멸로 인해 빼앗긴 깃발 (제국의 독수리기)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고고학적 발굴 조사 결과와 여러 실물 증거들에 의하면 제 9 군단은 110여년 경 영국에서 차출되어 네덜란드나 게르마니아 인근에 재배치 되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건 간에 이들이 마지막에 있었던 곳은 영국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리아누스 치세 초반에 브리타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군사적 피해와 병력소모가 컸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제 9 군단이 그 와중에 스코틀랜드 인근 어딘가에서 전멸당했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영국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영화 "센츄리온"에서 묘사되는 제 9 군단의 전멸.







또다른 로마 군단 포스팅들:

SPQR LEGIO XIII GEMINA 로마 제 13 군단의 역사
SPQR LEGIO XX VALERIA VICTRIX 로마 제 20 군단의 역사

덧글

  • Jes 2011/06/28 14:42 #

    어, 그러면... 제 9군단이 완전히 전멸당한 게 아닌 공중분해된 것일 수도 있단 건가요..
  • 들꽃향기 2011/06/28 14:44 #

    역시나 저도 9군단의 실종은 사실상 더 급한 전선으로의 차출(특히 게르만족이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입이 조금씩 증가하던 시기였으니)이 더 크고 결국 군제개편의 측면에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글을 통해서 "네덜란드나 게르마니아 인근에 재배치"라는 말씀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군요. ㅎㅎ

    다만, 흥미로운 것은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로마군의 격멸을 두고 민족서사시로 간직하고 싶어하는 근대독일의 감수성과 마찬가지로, 침략자를 격멸시켰다는 민족주의적 감수성이 '9군단의 실종(?)'이라는 부분에서 확대재생산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의 측면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할 것 같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 .... 2011/06/29 13:47 # 삭제

    근데 저때 침략자를 격멸시킨 애들은 지금 영국인들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잖습니까;;

    스코틀랜드라면 또 몰라.
  • 들꽃향기 2011/06/29 14:12 #

    말씀하신대로 그래서 저도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의 측면을 언급했습니다. ㅎㅎ 그에비해서 잉글랜드인들의 감정은 이중적(?)이라고 해야할까요? 보디카 여왕의 반란에 공감하면서도 언제나 자신들은 하드리아누스 방벽 남쪽의 사람들로 생각하고 싶어하는...ㅎㅎ
  • Warfare Archaeology 2011/06/28 14:47 #

    어? 저도 저 위의 영화들 보면서 저게 사실인가 싶었는데...아니었군요.

    호오~재밌게 잘 봤습니다. ^^ ㅋ
  • hyjoon 2011/06/28 14:53 #

    솔직히 적을 만나서 전멸되었다기보다는 군제 재편으로 공중분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 초효 2011/06/28 15:10 #

    미국, 영국, 프랑스 합작의 영화 '마지막 군단'에서는 9군단이 로마 말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해산되었다고 나오지요.
    어떤 이는 브리타니아를 떠나고, 남은 이들은 켈트족에 스며들어 땅파고 살고 있었는데, 마지막 황제께서 피난을 오신 덕분에...
  • Real 2011/06/28 15:25 #

    결국 로마의 정통은 아더왕의 아버지가 이어받은 것이며 영국은 로마의 정통자에 의한 아더왕의 전설과 존재가 남아있다라는 영국 프로파간다의 진수를 보여줬지요.ㅋ
  • 네비아찌 2011/06/28 15:21 #

    그런데 단순한 부대 이동과 재편성 때문에단대호가 사라졌다면 단대호가 부활되지 못한건 왜그랬을까요.
    혹시 국군에 14연대가 없어지고 프랑스군에 제1외인공수연대가 없어진 것처럼 반란에 연루되었던 걸까요?
  • Real 2011/06/28 15:25 #

    전 개인적으로 9군단을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왜 13군단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1/06/28 15:42 #

    제 생각에도 아마 9군단은 게르마니아 지역에 재배치 되었다가 군제개편으로 코미타텐세스(야전기동군단)들로 분해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꽃샘바람 2011/06/28 16:14 #

    사족인데, 크라수스 이끌던 파르티아 원정에서 패한 로마 군대가 중국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더라고요. 확실한건 아니것 같지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952980
  • 위장효과 2011/06/28 16:51 #

    모로아가 자신의 책에서도 "제 9군단의 전멸 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제 6군단을 급히 브리타니아로 배치하였다." 대략 이런 식으로 써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을까요.
  • asianote 2011/06/28 17:00 #

    혹시 로마군제사에 대해 다룬 괜찮은 서적 한국어판 있으면 추천바랍니다.
  • 레기오 2011/06/28 17:08 # 삭제

    저는 외계인들이 수리노마즈 마약 재배나 다른 시간대 최강군단들끼리의 워게임 재현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유에프오로 9군단을 납치해갔다는 설들을 좋아합니다.(...)
  • 그람 2011/06/28 18:38 #

    저 재배치랑 관련되어서 눈속의 독수리도 있었는데 저는 이쪽이 더 현실성이 있더군요.
  • 랜디 2011/06/28 21:00 #

    저는 어떠한 불명예스런 일로 기록말살당한게 아닌가란 추측도 해보고 있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6/28 23:01 #

    자료라더 더 있으면 좋으련데 부족해서 상상력으로 다가오는 사례군요.
  • 행인1 2011/06/28 23:23 #

    1. 국내에서 영화 센츄리온 개봉당시 실화라 '카더라~' 하던게 이것에 기원을 두고 있었군요. 아마 9군단이 정말 전멸이라고 해도 브리타니아가 아니라 게르마니아였을듯 합니다.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가 더 나와서 9군단이 군제개편으로 사라졌다거나 게르마니아나 기타 다른 전장에서 전멸했다는 것이 확인되어도 이 '떡밥'은 여전할 것 같네요.

    2. 좀 다른 이야기지만 머나먼 곳에서 제국의 영광을 위해 진군하다가 야만족들에게 매복당해 전멸당하는 부대와 그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은근히 대중문화 여기저기서 종종 써먹는것 같습니다.
  • 萬古獨龍 2011/06/29 02:39 #

    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에스키모 2011/06/29 16:39 #

    asianote님.

    로마 군제사에 다룬 책이라면
    카이사르 군단 (ISBN-10 : 8977661277) 한번 읽어보세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삼왕국 전쟁사 또는 단순히, 영국 내전사

7년전쟁 북미전역

말보로 공작의 일생

로열 네이비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전쟁

라파예트 후작의 일생

영국육군 블랙왓치 부대史


통계 위젯 (화이트)

109173
973
4703108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420

I Support ROKN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아지캉 최고

9mm Parabellum Bullet

the pil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