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사 - 노팅엄 성에 휘날리는 王旗





헨리에타 마리아Henrietta Maria. 제대로는 앙리에트 마리Henriette Marie. 프랑스의 공주.
찰스 1세의 왕비. 버킹엄 공작 죠지 빌리에가 주선한 영-불 왕가간의 외교 혼약으로 인해 영국의 '국모'가 된 여인.


그녀와 찰스 왕의 혼약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런던 시민들, 나아가 영국민들의 반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오랜 숙적 프랑스의 공주를, 그것도 세계 규모의 종교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카톨릭 교도인 여자를 왕비로 삼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그런 반대는 일시적이었다, 1625년 6월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도버 해협을 건너 탬즈 강을 통해 런던에 들어오는 새 왕비를 기다리는 런던 시민들은 흥겹게 들떠 있었다고 한다. 왕족들에 대한 오랜 존경과 환영의 전통으로, 시민들은 런던 시내에 행차하는 앙리에트 일행을 열렬한 환호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그들의 젊은 왕비가 따뜻한 환영에 그다지 성의있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기심 많은 군중이 그녀를 둘러싸면 그녀는 등을 돌려 외면하거나 화를 내기 일쑤였다. 화이트홀 궁에서 열린 만찬에서는 새 왕비를 보러 몰린 사람들로 분위기가 왁자지껄해지자 벌컥 화를 내며 사람들을 모두 식당 밖으로 내몰았다. 그녀는 영어를 배우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고 프랑스에서 데려온 프랑스 여자들만 대화하려 했으며 심지어 그 며칠 후 있었던 찰스 1세의 대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왕좌로 국왕과 함께 걸어간 것은 왕비가 아니라 버킹엄 공작이었다. 카톨릭 교도로써 성공회식 미사 집전과 대관 예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곧 영국 국민들은 그녀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결혼 당시 16세의 소녀였던 앙리에트 마리는 노골적으로 영국과 영국인들을 싫어한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며 버킹엄 공작과도 사이가 나빴다. 향수병에 젖어 자폐적으로 지내던 앙리에트는 신교국가에서 카톨릭 교도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사람들을 도발했으며, 아홉 살 위의 남편인 찰스와도 한자리에 있는 것을 격하게 회피했다. 단순한 수줍음으로는 보기 어려운 이러한 태도에 화가 치민 찰스 왕은 결국 결혼 1년만인 1626년 6월에 버킹엄 공작을 대동하고 왕비의 처소로 쳐들어가 왕비의 프랑스인 가신들을 죄다 추방해버렸으며 울부짖으며 반항하는 왕비를 거칠게 대하며 옷을 찢었다. 이렇게 험악한 부부관계는 단순히 앙리에트 마리의 소녀적 어리광 때문만은 아니었고, 당시 찰스 1세가 마주하던 정치적 난관들과도 관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위 초기 찰스 1세는 그 자신의 정치적 세련미의 부재와 점점 자신감을 얻어가는 의회와의 충돌 덕택에 계속해서 전투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 버킹엄 공작이 지도하다 거둔 전략전술적 대실패들로 인해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버킹엄 공작이 살해당하고(1628) 이후 의회가 해산될(1629) 무렵부터 국왕과 왕비 사이의 관계도 개선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626년에 왕비의 프랑스인 가신들이 퇴출당한 후, 왕비 주변을 채운 것은 명망높은 가문들에서 온 영국인 귀부인들이었고, 이들은 영-불 관계 개선을 바라던 프랑스 외교관들의 조력을 받아가며 왕비가 왕과 영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하려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친구가 거의 없었고 버킹엄 공작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왕은, 공작이 전쟁 지휘를 위해 자리를 장기간 비우는 일이 잦아지자 깊어진 외로움 때문에 왕비를 자주 찾게 되었으며, 공작이 살해당한 후에는 그 비탄 때문에라도 더욱 애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영국에 적응하고, 주변의 지도로 인해 더 성숙해진(20세) 왕비와, 외로워하던 왕(29세)은 결국 친해질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궁정을 드나들던 이들이 남긴 기록들에 의하면, 그 무뚝뚝하던 찰스 1세는 갑자기 구애자가 되어 앙리에트 마리에게 끊임없이 선물을 선사했고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안절부절 못했다. 같이 있을 때는 애정을 있는데로 과시했는데, 부부의 애정행각을 어느 날 만찬 자리에서 목격한 네덜란드 대사가 본국에 ‘왕과 왕비가 식탁에서 백번 이상은 키스를 해대었다’고 보고할 정도였다. 사랑은 일방적이 아니어서, 둘 사이의 첫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음에도, 왕의 사랑 덕분에 곧 회복한 왕비는 자신이 ‘모든 궁전들의 공주들 중에서도 최고로 행복(the Happiest Princess)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the happiest woman in the world)'라고 선언할 지경이었다. 왕비는 금새 다시 임신하여 훗날의 찰스 2세가 될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찰스 1세의 ’개인 통치기‘ 내내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매리, 제임스(훗날의 제임스 2세), 엘리자베스, 앤, 헨리, 앙리에타까지.



이것이 좀 더 평화로운 시대의 이야기였다면 ‘왕과 왕비 금슬이 엄청 좋았대~요’ 쯤의,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아무 의미없는 미담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부부의 금슬은 당대의 역사 향방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진 찰스 1세는 곧, 왕비로부터 애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조언들까지도 받게 되었다. 문제는 정치 감각이나 식견이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왕비의 조언들은 때때로 상당히 부적절한 것들이었으며 이를 찰스 1세가 자주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왕비의 인기는 왕의 인기보다도 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녀의 아주 당당하게 표출되는 카톨릭 신앙은 그녀를 모든 카톨릭 음모론의 중심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치적 신중함의 개념을 갖고 있지 못했던 그녀는 당당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카톨릭 교도 구명이라던지 친 카톨릭 가신들의 임용 등으로 정치활동을 펼쳐 반감을 쌓아갔고, 공적으로는 비록 ‘Queen'이 거론되지는 않았음에도 대중적으로는 Queen의 악의 근원이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앙리에트 마리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더욱 저돌적으로 나갔고 남편에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강경책을 펴도록 종용했다. 1641년 급격하게 뜨거워진 민중과 사회의 분위기와 개혁의 열풍은 찰스 1세로 하여금 왕비와 자식들의 생명이 위험에 쳐했다고 믿게 만들었고, 이러한 위기감이 왕비의 발언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다섯 의원들. 좌에서 우로 핌, 함덴, 홀즈, 스트로드, 하셀리그]


왕비와 왕의 눈에는 모든 것은 의회에서 청교도 여론을 선도하고 있는 다섯 의원, 특히 존 핌의 탓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과 시기에 왕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이 들어왔다. 존 핌이 주도하여 1641년 11월 말에 의회가 내놓은 '대간주(大諫奏, the Grand Remonstrance)‘는 왕의 권위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려는 의도로 가득찼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급진적인 문건으로, 이것이 국왕 부부를 폭발시켰다. “국왕 폐하의 비천하고도 순종한 신하들이, 모든 충실함과 겸손함을 담아 폐하께 간청하옵니다We, your most humble and obedient subjects, do with all faithfulness and humility beseech your Majesty”라는 문장으로 짐짓 예의 바르게 시작하는 이 문건은 왕의 잘못, 카톨릭 신앙을 가진 이들을 중용한 것의 죄악성,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방안, 의회의 요구 등 2백여가지의 항목들을 담고서는 “폐하께서 좋은 조언가들과 선인들의 사랑을 받으실 수 있도록That His Majesty may have cause to be in love with good counsel and good men” 그리고 “품위있게 살 수 있도록 폐하의 장원이 유복하게 회복to see his own estate settled in a plentiful condition to support his honour”할 수 있도록 이 요구를 받아들여 “왕국에 행복, 부, 평화와 안정이 깃들 수 있게to see happiness, wealth, peace and safety derived to his own kingdom“ 하라고 ’간언‘ 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서 Humble Beseech지, 사실상의 탄핵문이자 협박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 교도들에 대한 비난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는데, 이는 당당한 카톨릭 교도인 여왕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때까지 그러마 그러마 하며 의회가 내놓는 온갖 요구들에 서명해오던 찰스 1세는 이 대간주만큼은 굳건히 거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1642년 1월 4일 화요일에 찰스 1세가 보인 정치적으로 납득도 이해도 안 되는 극단적인 행보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거부권 행사도 아니고, 체포영장 신청도 아니고, 가히 쿠데타 시도로밖에는 볼 수 없는 그 행보는 왕비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식 기록이 아닌 야사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앙리에트 마리는 의회가 체포영장 인가를 거부하자, 과격한 행동을 취해도 될지 망설이는 찰스 1세에게 몸소 가서 그 5인의 하원의원들을 잡아오라고 강요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세요! 겁쟁이 같으니라구. 직접 가서 그 도적놈들의 귀를 잡아끌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평생 나를 볼 생각 하지 마세요.Go, you poltroon! Go and pull those rogues by ears, or never see my face again"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류의 협박은 앙리에트 마리가 찰스 1세에게 조언할 때 흔히 하던 표현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찰스 1세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왕비에게 한 시간 내로 돌아오겠다고 한 후, 몇 명의 가신들과 400여명의 병졸들을 데리고 궁을 나섰다. 왕은 동시에 런던 시장에게 서한을 보내어 체포령이 내려진 존 핌, 존 함덴, 덴질 홀즈, 윌리엄 스트로드, 아서 하셀리그를 보호하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일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왕이 행차하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문도 모르고 거리의 군중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했고, 곧 뉴 팔라스 야드를 지나 의사당에 도착한 찰스 1세는 완전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왕은 의원석에서 자신이 아는 얼굴들을 발견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하원의장석에 당도하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의장, 미안하지만 의자를 잠시 빌리겠소.”

[1642년 1월 4일. "I See All My Birds Have Flown."]


의장석에 앉은 국왕은 다섯 의원의 이름을 호명하며 앞으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왕은 다시한번 물었다. “핌 씨 여기있소?Is Mr. Pym here?" 여전히 아무도 답하지 않았고 하원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에 왕은 몸을 돌려 옆에 서 있던 하원의장 윌리엄 렌탈William Lenthal게 질문을 되풀이했다. 질문을 받자 의장은 무릎을 꿇고는 "전하, 저는 오로지 의회가 제게 지시하는 것만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답했고, 왕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뭐 상관없소. 내 시력은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오.No Matter, I think my eyes are as good as any other's”라며 좌중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왕이 목표했던 다섯 명은 당연히 그 자리를 이미 뜬지 오래였다. 결국 찰스 1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작전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내 새들이 전부 날아가 버렸지만, 그들이 여기로 돌아오는 즉시 내게 보내도록 하시오Well, since all my birds have flown, I do expect that you will send them unto me as soon as they return hither."

허세였다. 하원에서 나온 왕은 이번에는 길드홀(런던시청)로 향해 런던 시는 그 다섯 의원들을 보호해주어서는 안되며 발견 즉시 자신에게 인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시의원들의 반응은 싸늘하던 하원의 반응보다는 뜨거웠다. “의회의 권리! 의회의 권리!Privileges of Parliament!” 적대적인 외침에 왕도 소리쳐 대꾸했다. “어떠한 특권도 반역자를 합법적인 재판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소!" 반역자Traitor. 이제 그 다섯명의 의원들은 왕에 의해 아예 반역죄인으로 선언되었다. 그들이 왕이 당도하기 전에 의사당에서 도망친 것도 왕위를 전복하려는 반역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왕은 그렇게 믿었고, 왕의 적인 다섯 의원들과 그들을 지지하던 이들은 이제 왕이 무장병력을 이끌고 의사당에 들이닥침으로써 폭군의 본색을 드디어 드러냈다며 흥분했다. 다시 화이트홀 궁으로 돌아가는 왕의 행차 옆에서 절반의 군중들은 의회의 권리를 외쳐대며 왕의 눈을 가리는 ‘간신’들을 욕했고 나머지 절반은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KING을 외쳐대며 도적 핌ROGUE PYM을 욕하였다. 이것이 ‘1월 4일의 쿠데타 시도’ 또는 ‘5인의 체포 시도Attempted Arrest of Five Men’로 불린 사건의 전말이었다. 왕은 스스로의 손으로 벌집을 쑤셔 놓았다.

1월 6일에 이르자 런던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수천 군중이 거리를 매웠으며 다섯 의원들을 무력으로 끌고 가려 군대가 투입된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도로 포장을 뽑거나 돌들을 주워 돌팔매질을 준비했다. 카톨릭 교도로 의심되는 사람들이나 카톨릭 예배소들은 공격받고 약탈당했다. 거리마다 시민들에 의해 바리케이드들이 설치되었으며 런던 시 정부에 이어 시 상비 민병대가 하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무장하고 소집하여 전투를 준비했다. 외로이 국왕을 지지하던 런던 시장 리차드 거니는 런던 민병대 소집을 거부하였으나 이에 하원은 민병 소집 권한을 시장으로부터 뺏어와 하원 내 안보회로 가져왔다.

사태가 이렇게 급박하게 치닫자 왕과 그 가솔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화이트홀 궁과 런던 시내에서 빠져 나와 햄튼 궁으로, 그곳의 준비가 미흡하자 그 다음에는 윈저 성으로 옮겨 갔다. 2월이 되자 왕비와 공주들은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났다. 안위를 위해서였지만 동시에 대륙으로부터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왕비는 헤이그로 떠나면서 덴마크 왕과 네덜란드 오렌지 공에게 전달할 지원 요청 서한, 그리고 군자금으로 쓸 보석들을 챙겨갔다.

그동안 런던 시 주변에서는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아예 참호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민병대의 수는 불어났으며 거리에서 시민들은 군사훈련에 동참했다. 왕과 그 가신들도 병력을 소집하고 군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군사기지들과 주요 도시들을 확보하기 위한 교섭 경주도 시작되었다. 찰스 1세 측과 의회 측은 몇 달간 별 의미 없는 교섭 서한들을 주고받았으나 양측 모두 강경파들이 대세를 주도하고 있었다. 지주들과 귀족들은 땅을 팔거나 사비를 털어 군자금이나 병력을 마련해 왕에게, 또는 의회로 달려갔다. 사태는 악화일로로 질주하였다.



[1642년 8월 24일. The Raising of the Royal Standard At Nottingham Castle]



민심이 흉흉해지고 두터운 전란의 공기가 잉글랜드 전역에 감도는 가운데 몇 달이 순식간에 흘러 여름이 되었다. 교섭의 시기는 흐지부지 흘러가버렸고 전쟁의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1642년 8월 24일, 국왕은 노팅엄 성에 입성했고 성 앞의 벌판에 깃발을 하나 꽂았다. 친정親征의 왕기王旗였다. 왕기 앞에서 국왕의 문장관에 의해 현 하원과 그 휘하 군대를 반역죄인들로 규정하는 어명이 반포되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우중충한 날이었다. 저녁 늦게,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서 그러지 않아도 단도와 식칼로 대충 구멍을 파서 꽂았던 깃대가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http://kalnaf.egloos.com/tag/EnglishCivilWar

덧글

  • 리리안 2012/01/11 15:23 #

    의회 안으로 들어간 것 까지는 괜찮아 보였는데...무장 병력을 끌고 간게 결정적인 실수 인듯 싶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깃대가 부러지면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똑같군요...
  • 월광토끼 2012/01/12 15:09 #

    물론 저 깃대 얘기는 당대에 '모두가 불길한 징조라고 수군거렸다' 는 식으로 서술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랬다는 얘기지요.
  • 냉동만두 2012/01/11 15:23 # 삭제

    잘 들어가셨는지요.
    장시간의 비행때문에 힘드셨을 텐데도 이런 양질의 글이라니.

    이번에도 적절한 타이밍에 끊으셨으니 며칠간 편히 잠 못 이룰지도요. 다음 글 기대할게요^^
  • 월광토끼 2012/01/12 15:10 #

    늘 덧글 달아주심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사실 비행기 안에서 비몽사몽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써내려간 덕에 혹시 이상하진 않으려나 걱정하긴 했는데 양질이라 느끼셨더니 다행입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2/01/11 16:01 # 삭제

    헨리왕이 이혼 한번 하겠다고 종교를 바꾼게 이렇게 나라가 몇 번이나 흔들렸는지......
  • 월광토끼 2012/01/12 15:11 #

    물론 이혼 한번 하기 위해 그 모든 걸 했다고 보기 보다는, 다른 중대한 이유들 - 왕권의 강화라던가 왕실 재원의 확보라던가, 그리고 당대 사회에 불던 종교개혁의 바람이 영국에도 영향을 끼침에 상부에서 선수를 쳐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던가- 이 큰 요인이었다고 보는게 옳겠지만 말입니다..
  • 한양댁 2012/01/11 18:13 #

    지금 [더 튜더스]란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침 1534년 - 모어 처형당하기 직전이거든요. 헨리8세가 찰스 1세를 봤다면 참 여러 가지로 할 말(혹은 호령 내지는 뭐 기타 등등)이 많았겠구만요.
  • 월광토끼 2012/01/12 15:13 #

    못난 놈이라고 꾸짖었겠지요. 둘 다 절대왕권을 신봉하는 절대군주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사람 주무르는 솜씨는 달랐으니까요. 그렇더라도 찰스 1세도 결국은 변화하는 세태와 시대(튜더 왕정 시대와 스튜어트 왕정 시대의 간극은 좀 많이 크지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말대꾸를 할 여지가 있을 겁니다.
  • Esperos 2012/01/11 18:14 #

    그야말로 종교가 공적인 영역을 감당할 때에 나올 수 있는 한 편의 정치 드라마로군요. 역사가 떄로는 더 드라마틱할 떄가 있어 재미있습니다.
  • 월광토끼 2012/01/12 15:14 #

    물론 정치 변혁에서의 종교의 역할을 또 과대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드라마틱한 건 사실입니다. 역사는 극작보다도 더 극적입니다.
  • 자이드 2012/01/11 18:20 #

    마지막 구절이 암시하는게 의미심장하네요
  • 월광토끼 2012/01/12 15:14 #

    미래가 보이는 듯 하지요
  • 셔먼 2012/01/11 19:17 #

    비단 찰스 1세라도 병졸을 이끌고 의회에 쳐들어가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는데, 역시 왕비가 그런 행동을 하게끔 부추긴 것이었군요.
  • 월광토끼 2012/01/12 15:15 #

    애처가인건 좋지만 그렇다고 공처가가 되면 안된다는 얘기일지도 ㅎ
  • 로자노프 2012/01/11 22:16 #

    이제 전쟁이 시작됬군요. 그나저나 매제나 형부나 어떻게 저렇게 아내에게 약할 수 있는건지...
  • 월광토끼 2012/01/12 15:15 #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좋고 아내의 조언을 믿는 것도 좋지만 자기 판단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겁죠
  • 행인1 2012/01/11 22:42 #

    찰스 1세는 본인도 그렇지만 왕비도 정치감각은 영 꽝이었던 모양입니다.
  • 월광토끼 2012/01/12 15:16 #

    그런데 왕비 스스로는 자기가 아주 노련한 정치꾼 쯤 되는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ㅅ=
  • 행인1 2012/01/12 20:52 #

    망하는 집안 다들 그렇죠.ㅡㅅㅡ
  • 모에시아 총독 2012/01/12 09:30 #

    드디어 영국내전의 전투가 시작되는 군요.
  • 월광토끼 2012/01/12 15:16 #

    아니.. 아직도 전투 얘기 하려면 멀었습니다 [...]
  • 누군가의친구 2012/01/14 00:35 #

    이제는 화승에 확실히 불이 붙었습니다. 물론 발사하려면 좀더 다른 과정이 필요하겠지만요.
  • Allenait 2012/01/14 11:24 #

    이제 도화선에 불이 붙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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