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밖과 안에서"

역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쓰잘데 없는 고민들을 하다가 역사학 담론을 다루는 名著를 읽게되면 부끄러움이 들 때가 많다. "아 이미 大賢人들께서 이미 다 사유하고 고뇌하고 담론해 놓으신 문제들이구나" 그에 내가 무엇을 덧붙일 수 있으리요. 그저 경탄하며 현인의 말씀을 좇음과 동시에 설파할 밖에.

요즘 선물로 받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歷史論On History (민음사, 강성호 譯)을 읽고 있다. 홉스봄급의 대학자의 논변에서 주의깊게 보지 않아도 될 내용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제일 첫 장 "역사의 밖과 안에서"의 내용이 내 평소 생각하던 바를 그대로 관통하던지라 읽으며 깊이 공감하였기에, 그 내용을 발췌, 정리해 여기 옮겨본다. 한국에서 역사를 소중히 하는 사람, 또는 역사를 우습게 아는 사람, 그리고 역사를 조작하거나 이용해 먹으려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정말 중히 들려주고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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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그래서 전체적으로 중앙, 동유럽 국민들은 실망스러운 과거와 더 실망스러운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지닌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불안정을 탓할 누군가를 찾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분위기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나 관용을 베풀지 않는 움직임일 것 같다. 낯선 이방인을 비난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손쉬운 일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다. 이것은 대학의 기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최소한 역사가이자 대학 선생인 내 작업에 관계된 것이다. 양귀비가 마약의 원료인 것처럼, 역사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나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또는 원리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있어 본질적인 구성 요소, 아마 가장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다. 만약 적당한 과거가 없으면 그러한 과거는 언제든 발명될 수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이 정당화하려는 현상이나 사상은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나 영원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딱 들어맞는 과거는 대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이념들의 현대판인 종교 근본주의와 현대 민족주의 모두에 해당된다. 호메이니가 이슬람 국가를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현대판 종교 근본주의는 겨우 1970년대 초에야 출현했다. 과거는 현재를 정당화시키는데 이용된다. 과거는 별로 기념할 가치가 없는 현재를 영광스럽게 만드는 배경을 제공한다. 인더스 계곡의 고대 도시 문명을 "파키스탄 5000년"이라는 제목으로 연구했던 글을 본 일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학생 투사가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 1932~1933년 이전에는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구나 1940년까지는 파키스탄 독립은 심각한 정치적 요구도 아니었다. 파키스탄은 1947년 이후에야 국가로서 실존할 수 있었다. 슐리만이 발견한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보물을 공공 전시하기 위해 반환을 요구한 터키의 앙카라 정부와 고대 트로이 전쟁 사이의 연관보다 모헨조다로 문명과 현재의 이슬라마바드 정권 사이에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파키스탄 5000년이라는 표현은 파키스탄 46년이라는 표현보다 어쨌든 더 좋게 들린다.

역사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예기치 않게 정치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역사학이라는 전문 영역이 핵물리학과는 달리 최소한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학이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작업장에서 화학 비료를 폭약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던 것처럼, 우리의 연구도 폭탄 공장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 책임을 져야하며, 특히 역사를 정치적, 이념적으로 악용하는 일을 비판해야 한다.

첫 번째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다만 현재 진해되고 있는 몇가지 점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소설가들이 소설의 줄거리를 허구보다는 기록된 실제에 기초해서 구성하는 경향이다. 그럼으로써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허구 사이의 경계가 대중 사이에서 애매해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포스트모던적’ 지적 경향이 서구의 대학에서, 특히나 문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강해진 점이다. 그들의 주장은 객관적 존재의 지위를 요구하는 ‘사실’은 단지 지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 간단히 말해서 사실과 허구 사이에 명확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능력은 역사가에게 있어서, 심지어 가장 전투적인 反실증주의 역사학자들조차 절대적으로 갖추고 있는 기본이다. 사실을 창조할 수는 없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었거나 살아있거나 둘 중 하나다. 믿을 만한 증거를 이용할 수 있다면, 문제는 증거에 기초하여 이의 없이 해결될 수 있다. 1915년의 계획적인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을 부인하는 현재의 터키 정부는 옳거나 틀리거나 중 하나이다. 현상을 해석하거나 더 넓은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부합시키는 과정에서 만장일치로 하나만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진지학 역사학적 논의를 거친 끝에, 대학살에 대한 터키 정부의 부인을 무시한다. 힌두교 광신자들은 아요디아의 이슬람 사원을 파괴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굴 정복자 바부르가 힌두교인들에게 특별히 신성한 라마 신의 탄생지에 이슬람 사원을 강제로 세웠다는 근거를 표면에 내세워서 말이다. 그래서 인도 대학들에 있는 나의 동료들과 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연구 성과를 출판했다. 첫째, 누구도 19세기까지는 아요디아가 라마 신의 탄생지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둘째, 이슬람 사원은 바부르 시절에 세워지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나는 이것이 이슬람 사원 파괴 사건을 일으킨 힌두교 당의 대두에 많은 영향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종교적 불관용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단순한 거짓말이나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근거해 있다. 투르크가 세르비아 전사들과 동맹국들을 무찔렀던 1389년의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인들의 집단 기억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이 지역 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알바니아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거나 이 지역은 세르비아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덴마크는 11세기 이전까지는 데인족이 정착해 통치했던 잉글랜드 동북부 대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영국 동부는 ‘데인들의 땅’이라는 ‘데인로’로 알려져 있고, 이 지역 마을들의 이름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언어학상 덴마크어로 되어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역사를 이념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대개 노골적인 날조 보다는 시대착오에 근거한다. 그리스 민족주의는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마케도니아 왕인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발칸 반도에서 그리스를 정복한 후로 모든 마케도니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이고 그리스 민족 국가의 한 부분으로 되었다는 근거에서 그렇게 주장한다. 이것은 마케도니아에 대한 다른 모든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학문적인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 지식인이 그러한 주장이 역사적 견지에서 볼 때 무의미하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기원전 4세기에는 그리스 민족 국가나 그리스인 전체를 포괄하는 어떠한 단일 정치적 실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케도니아 제국은 오늘날의 그리스나 다른 어떤 근대 민족 국가 같은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은 마케도니아 통치자들을, 그 후에 등장한 로마인 통치자들을 대했던 것처럼럼, 그리스인이 아닌 야만인으로 대했다. 더욱이 마케도니아 자체는 역사적으로 어떠한 단일한 민족체와도 동일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뒤엉킨 혼합체이다. 따라서 이식된 극단적인 마케도니아 민족주의도 같은 근거에서 무시되어야 공정하다. 즈보니미르 대왕을 투지만 대통령의 선조로 묘사하는 크로아티아의 모든 선전물들을 무시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교과서 역사를 발명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도 이에 용감하게 저항하는 자그레브 대학의 역사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들이다.

역사를 신화와 날조로 바꾸려는 이러저러한 시도들은 단지 질 나쁜 지적 농담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국 이것들은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결정한다. 학교 교육에 이용하기 위해 중일 전쟁을 미화하는 일본 당국은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신화와 날조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의 자신들을 민족성, 종교, 또는 과거나 현재의 국토 경계선 따위로 규정하려는 집단들은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더 뛰어나다”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세상에서 확실성을 찾으려 한다. 역사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기억이나 집단적 전통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성직자, 교사, 역사 저술가, 잡지 편집자와 텔레비전 프로듀서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역사가가 자신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역사가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격정에서 비켜서 있어야 한다. 역사가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격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는 이스라엘 역사가 아모스 엘론이 쓴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엘론은 히틀러가 행한 유대인 대량 학살이 이스라엘이 국가로 존립해야 함을 정당화하는 신화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이 대량 학살 사건은 정당화 차원을 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우익이 집권한 시기에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의 국가 정체성과 우월성에 대한 민족적, 의식적 주장으로 변질되었고, 야훼와 더불어 공식적 민족 신념체계의 중심 항목으로 변해버렸다. ‘대학살’ 개념의 변질 과정을 추적한 엘론은 역사는 이제 민족적 신화, 민족적 의식, 민족 정치와 따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국민은 아닌 나로선 이것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역사가로서는 엘론의 의견에 동의한다. 유대인 대학살을 학문적으로 다룬 뛰어난 저작들은 유대인이 쓴 것이든, 비 유대인이 쓴 것이든지 간에 관계없이 히브리어로 잘 번역되지 않곤 했다. 또는 굉장히 늦게 번역되거나 편집자의 부정적 견해를 실은 채 번역되었다. 대학살 역사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 연구가, 입에 담기도 무서운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를 줄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스라엘 존립성 정당화의 신화와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우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한 민족 신화, 인종 신화, 그리고 다른 신화들의 형성에 저항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일은 우리 역사학자들을 인기 없게 만들 것이다. 체코슬로파키아 공화국의 창건자인 토마스 마사리크는 대부분의 체코 민족 신화들이 근거하고 있는 중세 필사본들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주저없이 입증했고, 따라서 그가 정치에 입문했을 때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행해져야만 하고, 나는 여러분 중에 역사가가 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역사가의 임무에 대해 말하고 싶은 전부이다. 그러나 끝내기 전에 한가지 더 당부하고 싶다.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은사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네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은 너만큼 우수한 학생이 아니다. 그들은 수업에 흥미가 없고 싫증 내기 쉬운, 그리고 모두 비슷비슷한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이류 정도의 평균적 학생들이다. 너는 일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일류 학생들은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들이다. 일류가 아닌 나머지 학생들이 바로 너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다.”

이 말은 대학 뿐 아니라 온 세상에 적용된다. 저부, 경제, 학교 등 사회의 모든 것은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사회 내의 모든 것은 특별히 영리하거나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성공하지 못했거나 성공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은, 즉 실제로 결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사회의 모든 것들은 출생, 결혼, 사망의 기록에서만 개인으로서 존재하며 언제나 이웃들의 바깥에서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는 부자, 영리한 사람, 예외적인 사람들에게 모두 공간과 전망을 제공해야 하지만, 그만큼 사회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위해 계획된 사회이다. 세계는 우리의 개인적 욕망을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모두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가 아니고 계속 유지되어서도 안 될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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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홉스봄이 부다페스트에 있는 중앙유럽 대학에서 학기 개시 강연의 원고로 쓴 내용이다.

덧글

  • kirhina 2012/01/17 14:09 #

    구구절절이 심금을 울리는군요.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피그말리온 2012/01/17 14:15 #

    정말 대현인의 클래스가 느껴지는군요....
  • hyjoon 2012/01/17 14:21 #

    맥밀런의 『역사 사용 설명서』에서 이런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 홉스봄의 논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 크핫군 2012/01/17 14:29 #

    그나저나 아직 안돌아가셨나;;;
  • 셔먼 2012/01/17 14:32 #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지 잘 보여주는 글이군요.
    항상 유념해 두어야겠습니다.
  • sonnet 2012/01/17 14:46 #

    “네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은 너만큼 우수한 학생이 아니다. 그들은 수업에 흥미가 없고 싫증 내기 쉬운, 그리고 모두 비슷비슷한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이류 정도의 평균적 학생들이다. 너는 일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일류 학생들은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들이다. 일류가 아닌 나머지 학생들이 바로 너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다.”

    이 부분도 좋은 것 같습니다.
  • asianote 2012/01/17 14:50 #

    좋은 글이네요. 세종조에 정치에 대해서 조선왕조의 사람들은 높게 평가했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한글 만들 것이 세종의 큰 업적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안했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매우 높게 평가하지요. 정말 역사는 언제나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 놀자판대장 2012/01/17 14:52 #

    오오 감동... 읽을 책 목록에 추가했습니다.

    PS: 환빠들은 안될꺼야 아마..
  • 검은제독 2012/01/17 14:55 #

    간지 대폭발이네요. 좋은 인문학서적을 읽으면 느끼는 전율이 있는데 이렇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빠A 2012/01/17 15:13 #

    저로서는 이 이야기가 결국은 강자들에게 복종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안습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령, 중국을 생각해 보면, 온갖 오욕을 다 합치더라도, 중국역사가 주변에 미친 압도적인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죠. 중국사와 한국사에서 모든 구라를 다 걷어내고 나면, 남는건 아마도 압도적인 중국의 영향력이겠지요.

    과연 그 순간에도 사람이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생각하게 될지요.
  • Bluegazer 2012/01/17 15:48 #

    홉스봄의 주장은 단순히 '현실을 인정하자' 가 아니라, 정치나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역사 해석에서 분리하자는 것입니다. 그 '압도적 영향력'이 현재에도 영속된다면 구라 역사를 만들어봐야 영향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영향력이 현재에는 사라지고 없다면 과거의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없어진 영향력이 도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나간 사실을 인정하는 거랑 현재의 강자에게 복종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가요;;
  • 초록불 2012/01/17 15:41 #

    좋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후배들에게 종종 "고민하지 말고 책을 봐라. 너희가 하는 고민이 너희가 처음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지요. 물론 저 자신도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 야스페르츠 2012/01/17 15:42 #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명문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 카시우스 2012/01/17 17:24 # 삭제

    근 몇년간 '고구려'와 관련해서 고취되는 민족 의식도 본문에서 지적하는 '신화적 역사'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의 상당수가 중국에 동화되었고, 당대에 '한민족'이라는 뚜렷한 민족 실체가 없었음은 확실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김춘추는 민족의 반역자라는 식의 이야기가 있죠)

    하지만 학문 외의 영역, 즉 정치권이나 대중이 "왜" 그러한 '역사적 환상'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 인민의 의지, 국민적인 지지...옛 적부터 이런 단어는 아주 많았죠- 이데올로기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신화의 대부분이 허구였음을 사람들이 인지했을때,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을때 - 이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그땐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처음부터 재고해야한다는 것이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천년간 외세의 위협에 맞서 한민족의 땅을 사수해온 우리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허구임이 밝혀졌을 때, 대신해서 그 자리를 메울 것은 어떤 생각일까요? 이런 '역사적 환상'은 공동체의 존립에 아주 유용하며, 반드시 다른 어떤 사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이런 '역사적 환상'이 사라졌을 때 닥쳐올 현실이 '홉스적 사회 구조'같은 거라면, 쉽게 선택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뭐, 문제는 이 과제가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에 들어간다는게 죽을 맛이지만요.
  • 역사관심 2012/01/18 07:07 #

    항상 고민하는 토픽중 하나입니다. 작년에 출간된 장문석의 '민족주의'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지요 (민족이라는 말을 '근대민족'으로 상치시켜 이야기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쉬운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2/01/18 07:24 #

    현시점의 제 관점은 역사학자들은 1)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2) 그러나 그 최대한의 객관적인 시각역시 '주관적'이 될수밖에 없다 (인간, 그리고 인문학의 성격상). 그러나 기본적인 역사학도의 모습은 역시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이데올로기 (저는 이걸 이데올로기라고 보지 않고 '전통' (민족개념이든 전통문화든 모든 만들어진 전통이든)이라는 개념으로 대치합니다만) 라는 것이 '허구'라는 생각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진 전통 (그것이 옳바른 쪽인가 아닌가는 또 다른 주제)는 허구가 아닌 실존하는 개념 그리고 영향력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재의 생각입니다. 역사학도는 순수한 사실을 추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말씀드렸듯 역시 자의적일수 있는 사실이지만) 근거로 인문사회학계에서는 충분히 해석하고 가치로 활용하는 것이 옳바른 체계가 아닐런지...하는 생각입니다. 거기서 혼란은 방지되겠지요.

    역시 문제는 사회에 그 사실들을 녹여서 해석해서 내보내주는 인문학계 자체의 성숙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곡과 해석 혹은 재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요- 성숙도라는 말은 그냥 쓴게 아니지요..
  • 카시우스 2012/01/17 17:31 # 삭제

    또한 모든 역사를 '사실대로' 밝혔을 때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역사를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왜곡해서 받아들이진 않을 것인가(대표적인 것이 조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비교적 폭넓게 알려지자 유교가 조선을 망쳤고, 조선은 미리 망했어야만 하는 쓸모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일반에는 만연합니다. 한반도의 역사시대에서 가장 발전하고 그나마 살기 좋은 시대였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요.)
    혹은 그것이 완전히 받아들여졌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건 분열된 사회는 아닌가... 꽤 복잡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해당 분야가 지향하는 '이상점'과 '현실'이 부딪히는 건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본문의 글은 제 생각엔 '이상적인 역사가로써의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 어쨌든 간만에 아주 좋은 글을 보게 되서 즐겁습니다. 양질의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2/01/18 07:06 #

    이건 카시우스님의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조선이라는 나라 (특히 성리학)는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볼수록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새삼 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말이지요;
  • Nara 2012/01/17 17:52 #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모두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가 아니고 계속 유지되어서도 안 될 세계이다."
    여러 모로 심금을 울리는군요. ㅠ_ㅠ
  • 유진 로 2012/01/17 18:35 #

    구구절절이 명언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자이드 2012/01/17 19:18 #

    하지만 역사를 이념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대개 노골적인 날조 보다는 시대착오에 근거한다.

    어느시대나 저 말로 꼬집을 대상이 등장한다는 게 인류의 비극이겠지요
  • 행인1 2012/01/17 23:16 #

    홉스봄이 지적한 [‘포스트모던적’ 지적 경향]은 소칼이라는 뉴욕대 물리학 교수가 저서에서 아주 통렬하게 비꼰바 있지요.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그럴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주 절찬리에 판매되는 중이지만 말입니다.
  • gforce 2012/01/18 02:37 #

    "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모두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가 아니고 계속 유지되어서도 안 될 세계이다"

    보아라 아인 란드 이년!!!ㅋㅋㅋㅋㅋㅋㅋ
  • 오그드루 자하드 2012/01/19 04:05 #

    아인 란드 : 콩사탕원 홉스봄 따위!
  • 소금인형 2012/01/18 02:53 # 삭제

    긁어 가겠습니다. ^^
  • Manglobe 2012/01/18 04:05 # 삭제

    좋은 글이네요. 비록 완전히 역사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수는 없겠지만 그런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네요.
  • 2012/01/18 07:0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euple 2012/01/18 09:57 #

    잘 읽고 갑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1/18 18:52 #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백수 라마르틴 2012/01/18 18:54 # 삭제

    요즘 새로운 민족 신화를 쓰고 계신 소위 뉴라잇 분들이 읽으셔야 겠군요. 박지향 보고 있나 ㅋㅋㅋㅋ
  • 키르난 2012/01/19 11:58 #

    맨 마지막 두 문단에서 반성, 반성 또 반성합니다. 앞부분도 공감하며 읽었지만 마지막이 참...;ㅅ;
  • 진성당거사 2012/01/19 13:34 #

    홉스봄 선생의 글은 언제 읽어도 참신하고 날카롭지요. 소개 감사드리고, 잘 읽었습니다.
  • 2012/09/07 18:52 # 삭제

    나는 홉스봄을 싫어한다.

    홉스봄은 알려진 것과 달리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다. 이 사람 글을 보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아주 하찮게 여기고(그는 식민주의자다) 페미니스트들을 아주 경멸하고 게이와 같은 성소수자들을 아주 혐오하고 흑인운동을 무시하는 철저히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백인 남성 마르크스주의자가 홉스봄이다.

    너무 그런 거는 모르고 우리 학계에서는 이른바 진보 또는 이른바 보수 학자 전부 다 홉스봄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쨌든 홉스봄은 그런 사람이다. 책을 면밀히 읽으면 그런 것을 알 수 있고 파악이 되는데 왜들 그렇게 홉스봄이라면 늘 난리들을 부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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