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는 비전공자의 적이 아니에요

"역덕후와 전공자의 차이에 관한 잡상겸 잡설"

-중기병이 센가 경기병이 센가 하는 지엽적인 문제는 학계에서라면 논의는 커녕 언급조차도 되지 않을 일이겠지만, 그런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도 허언을 하는 전공자가 나왔을 때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선 것이 역사 애호가들이라면, 전공자 비전공자 여부를 떠나 어느 쪽이 유익한 正道를 따르는 건지는 명확해 보일 것입니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어느 한 주제에 애착을 가져 장시간 다대한 지식을 쌓은 아마츄어는 응당히 전공자보다 훌륭한 학사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문제의 '전공자'의 개념이 대학원도 아닌 학부생까지 포함하게 된다면 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당연지사가 됩니다. 그러나 비전공자에게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HISTORIOGRAPHY를 교육받지 못하여, SAGA나 CHRONICLE의 탐닉에만 머무르게 된다면 아무리 오래 애정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다 하더라도 다년간 수련한 학위 소지자의 전문성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지요. 어느 축구 애호가가 20년째 만-체스터 유나-티드의 골수 팬이었다고 해도 퍼거슨 감독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제 소견에는, 역사학자, 나아가 학계는 비전문 역사 애호가들의 적이 아닙니다. -시발점이 된 이야기의 초점은 학부의 학도들의 태도에 맞춰져 있지만, 이야기를 더 진전시켜보자면 - 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이 학계 밖으로 탈출하여 가 닿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대중들 보다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아마츄어 애호가들이기 십상입니다. 그들 애호가들이 독서와 사유를 통해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면 읽는 이에게도 유익할 뿐더러, 쓰는 이들도 읽어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기뻐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수련을 쌓은 비전문가들의 놀라운 수준의 전문성은, 종종 전문가들의 실수나 착각도 엄정한 시선으로 잡아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전문가들도 단순히 Peer-Review로 국한되지 않는 시정과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이또한 대단히 이로운 일일 것입니다.


옥스퍼드의 머튼 칼리지에서 수학하고 지금은 옥스퍼드의 케블 칼리지에서 교수로 있는 역사학자 다이안 퍼키스Diane Purkiss는 저서 "The English Civil War: A People's History" (2006)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원문만 올릴까 하다가 한번 번역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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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독자분들께, 독자분들께서는 제 변변찮은 저서만으로는 꼭 알아야 될 만큼 중요한 모든 것들을 다 알게 되실 수는 없을 겁니다만, 그래도 이 저서가 주제로 삼아 쫓아가는 남녀들의 삶을, 그리고 그들이 지금 여러분께서 살고 계시는 마을이나 도시들의 거리를 걷고 있었음을 소개하여 친숙해지게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여러분 중 몇몇 분에게는 제가 감히 ‘소개’한다고 상상해서는 안 되겠지요. 여러분 중에는 영국 내전을 이미 오랜 친구로 삼아온 분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분들께서도 이 책의 페이지들을 훑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의심의 여지없이 여러분 중에는 우리나라의 지형들을 낱낱이 꾀어, 글로스터 공성전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고 데미-컬버린 포의 사정거리를 알고 있으며, 뉴버리 전투의 전투진형도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으며, 역사책에서 튀어나오는 위인지사들- 페어팩스, 크롬웰, 찰스 1세를 각자의 영웅으로 삼고 있는,만만찮게 훌륭한 아마츄어 전문가formidable amateur experts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여러분께서 제 책에서 혹여 발견하실 오류들에 대하여 미리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러분께 단지 격정에 빠지지 마시고, 여러분께서 이전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특히, 영국 내전이 전투가 아니라 고난이나 집필, 사상의 이야기였던 사람들과 사건들에 한번 익숙해져 보시길 간청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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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퍼키스 교수의 저러한 태도를, 다른 많은 역사학자들도 수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 비판받는 류의 전공자를 '전공자'라는 객체로 만들어 멸시하고 다투는 모습이 별로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학도'에 맞춰저 있는데.. 자기가 애정도 관심도 없는데 그걸 전공으로 택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별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취직을 위해서 전공을 택한다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이해하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제가 그 비판 대상의 실례를 목도한 바가 없으므로 공감은 못하겠습니다.


-이건 아마도 '전공에 애정도 관심도 없이 그냥 학과 선택해서 온' 학부생을 만나본 일이 없다는, 제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겠지요. 저는 제 전공을 사랑해서 이 전공을 택했고, 학과별 점수를 맞춰 가는 대학입시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며 '과'라는게 있어서 '과' 사람들끼리 뭉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이 나라 학부에서는 전공이 있을 뿐 과라는 개념이 없죠. 뭐, 여기서도 '좋아서' 한다는 사람들도 죄다 졸업만 하면 레쥬메 쌓아서 전공과는 아무 관계 없는 로스쿨들로 훌쩍 떠나버리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습니다만...

덧글

  • 크핫군 2012/01/18 18:41 #

    이거 왠지 제가 불길을 키운듯한;;;;
  • 월광토끼 2012/01/18 18:46 #

    ...? 전 앨런비님 '역덕후' 글 보고 쓰는 겁니다만..
  • 월광토끼 2012/01/18 18:47 #

    아아 역밸의 '중기병 논란'을 제일 먼저 지적해 주셨었군요!
  • 해색주 2012/01/18 18:43 #

    대학때 사학을 복수전공했고, 중국근대사를 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전공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죠.
  • 월광토끼 2012/01/18 18:46 #

    물론입니다.
  • 백수 라마르틴 2012/01/18 18:47 # 삭제

    그런데 그 트롤이 과연 전공자인지 의심스럽더군요.
  • 월광토끼 2012/01/19 14:16 #

    '기병 논란'의 근원이 된 그 분은 전공자 이전에, 학위까지 다 따고 대학서 강의 나가는 '학자' 지요. 다만 그다지 훌륭한 학자가 아니라는건 분명해 보이는게 문제.
  • 백수 라마르틴 2012/01/23 21:32 # 삭제

    그런 돌팔이한테 생돈내고 배우는 사람들은 더 큰일이군요.
  • 누군가의친구 2012/01/18 18:48 #

    물론 상호 보완적인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근거없는 우월감이 그런 벽을 만드는 거겠죠.
  • 아이나리 2012/01/18 19:09 # 삭제

    환빠들이나 일부 이글루저의 경우처럼 비전공자들의 전공자에 대한 근거없는 적대감도 문제입니다. 글의 시발점이 된 앨런비가 지적한 엔하위키글만해도 작성자가 전공자인지 비전공자인지 확증이 없잖아요? 그냥 추측이지.
  • 누군가의친구 2012/01/18 19:46 #

    비로그인에게는 미안합니다만, 그런 의도로 적은 덧글은 아닙니다만.
  • 월광토끼 2012/01/19 14:17 #

    '근거없는 우월감' 이란 말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자기 전공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 shaind 2012/01/18 18:48 #

    사실 미시사를 전공하지 않는 이상, 역사학계의 구성원이 좁은 특정분야에 대해 역덕후나 밀덕후들처럼 매우 상세한 역사적 사실들까지 열심히 바리바리 주워모으지 않고, 그래서 그 동네에서는 이미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지식을 고수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자신의 권위와 프레스티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학계 구성원들은 의외로 역덕후와 적이 되기 쉬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블레이드 박사는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죠.
  • santalinus 2012/01/18 19:06 #

    블레이드의 문제점은 그 사람 자체의 문제점이지 역사학계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블레이드라는 사람이 한국 사학계를 결코 대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학계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 혼자서 얼토당토않은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전공자'로 보고서 공격의 대상으로 보면 다른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심히 억울한 일이 될 것입니다.
  • 월광토끼 2012/01/19 14:20 #

    이 점은 저도 산탈리누스님과 동감합니다. 예를 들자면, 솔까역사가 이글루스 역사 밸리의 '전형'을 대변한다고 말한다면, 저같은 사람 입장에서도 심히 억울할 수밖에 없겠지요.
  • 유리멘탈 2012/01/18 19:03 #

    저도 사학을 꿈꾸다가 어찌저찌하다보니(+능력의 부족으로) 결국 다른 전공으로 가버리고 취미로나 조금 보는 정도인데... 그래서 아직도 사학과 전공인 분들은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물론 어떤 학문이나 전공자들은 존경해야한다고 보지만요...)
  • Cicero 2012/01/18 19:28 #

    비슷한 이유로 정치학을 전공한 입장이라 공감합니다. 저같은 경우엔 전공공부가 심화될수록 자연스레 철학이나 인류학, 사회학같은 다른 연계학문전공자분들에 대한 경외감이 자연스레 들더군요. 같은 사안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고 때론 그런 해석이 문제의 돌파구를 제시하는 그런 경우를 보게되다보니 말이죠.
  • 월광토끼 2012/01/19 14:21 #

    인문학은 '제대로' 하려면 정말 여러 분야에 걸쳐 넓고도 깊은 지식을 하고 있어야 하기에 저도 벽을 느끼는 일이 많습니다...
  • DeathKira 2012/01/18 19:38 #

    뭐 일단은 학부생이면서도 역덕에게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동의합니다. 뭐 아직 내공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은..
    뭔가 제 생각을 정리를 못했는데 쓰신 말씀을 보니 쉽게 정리가 되네요.
    애시당초 서로가 어느정도의 상호보완이 가능한 관계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상호간에 왠지 모를 적개심이 있는 건 사실이죠. 둘 다 한 다리씩 걸치고 있어서 그런지 서로 싸우는 거 보면 좀 찝찝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쪽이건 역사를 좋아하면서 판다는 사실은 동등하니까요.
  • 월광토끼 2012/01/19 14:24 #

    당연히 상호보완적인 관계겠지요. 다만, 상호 적개심 부분은 상존하는 문제도 아니며, 있다 하더라도 이미지 마케팅에 푹 빠진 애플 기기 애호가를 보고 IT 근로자가 느끼는 감정 수준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앨런비 2012/01/18 20:25 #

    에 뭐랄까-_-;;
    전 블레이드 저사람 대응은 전공자니 비전공자니 그런 문제와 전혀 달리 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전공 VS 비전공으로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놈은 아닙니다(...)
    전 그 글에서 여러번 밝혔던대로 엔하위키 해당항목과 개인적 경험 정도로 꺼낸 것이고-_-;;;;
    블레이드 저사람 기병문제는 그냥. 예전부터 헛소리 양산하던 사람 또 헛소리 양산하니 어이 없어서 키배 뛰어든 것입져=_=;
  • 월광토끼 2012/01/19 14:22 #

    물론 저도 블레이드 님 이야기나 기병 이야기 때문에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저는 앨런비님의 그 '역덕' 글에 대한 답으로 이 글을 쓴 것이고 때마침 벌어지고 있는 '기병' 논란은 예시로 언급했을 뿐이지요. 저는 전혀 오해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트랙백과 링크를 정식으로 해서 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어 뒤늦게나마 링크 추가해 놨습니다.
  • 초록불 2012/01/18 20:55 #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
  • 월광토끼 2012/01/19 14:25 #

    감사합니다.
  • 눈시 2012/01/18 21:20 #

    잘 읽었습니다. 고개 맹렬히 끄덕이고 갑니다. (__)
  • 월광토끼 2012/01/19 14:25 #

    고맙습니다.
  • FELIX 2012/01/18 23:14 #

    사실 역사학은 워너비는 많지만 현실적 문제로 떠나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요. 도대체 사학전공을 관심없다고 먹고 살려고 시작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을까요!!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학 만큼 인기있는 학문이 또 어디 있을까요.
  • 월광토끼 2012/01/19 14:26 #

    다만 엘런비님 글에 나온 내용과 논란의 주제가 된 '엔하위키 역덕후 항목'을 보면 자기 전공에 전혀 애정도 관심도 없는 전공자들이 수업 한두개 듣고 잘난체 하더라, 라는 얘기가 적혀 있어서 그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 셔먼 2012/01/18 23:49 #

    저는 분명히 역사학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한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학부를 지원한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될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학 시절만큼은 제 열정을 역사에 불태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월광토끼 2012/01/19 14:26 #

    좋은 의지입니다. 그 열정 반드시 계속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 Mr 스노우 2012/01/19 02:13 #

    동감합니다.
  • 진성당거사 2012/01/19 13:37 #

    언제나처럼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또 한사람의 전공자로서 이 문제를 항상 깊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 자이드 2012/01/20 03:45 #

    전공자 비전공자를 나누기 이전에 공격적인 어휘만 다듬어도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을텐데요...
  • 카시우스 2012/01/20 19:41 # 삭제

    역덕후 아마추어로써 유익한 글 읽고 갑니다. 아마추어지만 Saga나 Cronicle을 즐기는 것 못지 않게 '이 사건이 당대인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 가'..에 대해서 신경 쓰고 싶은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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