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노예를 지켜라! - 보스턴 시민들의 義氣

1840년대 말 보스턴에 젊은 흑인 부부가 살았다. 윌리엄 크래프트와 엘렌 크래프트. 이름에 걸맞게 부부는 실력있는 가구 제작가로 장롱 등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사실 이 둘은 탈주노예들이었다. 이들은 1847년 죠지아에서 탈출해 나와 그 극적 과정으로 인해 유명인사가 된 바 있었다. 엘렌은 약간 햇빛에 탄 정도의 백인으로 착각당할 만큼 피부색이 하얬기에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하여 남편을 거느리고 ‘흑인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북부에 있는 고급 병원을 찾아가는 병든 백인 신사’ 행세를 하여 북부로 갔다. 그것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탈주노예 지원단체들을 일컬는 표현)가 아니라 레알로 당당하게 기차 객실에 타고 탈주에 성공했다. 둘은 보스턴에서 취업할 수 있었고, 노예제 반대론자들은 이들의 탈주성공사례를 反노예제의 승리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 취재 때문에 크래프트 부부의 원 소유자가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 곧 추노 두 명이 파견된다.


[크래프트 부부]



보스턴은 당시 노예제폐지주의의 중추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고등법 우선주의’Higher Law Doctrine, 즉 인간이 만든 법보다 기독교 하느님의 법과 도덕이 우선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노예제 옹호 법안들과 탈주노예 반환 관련법안들에 저항하는 기조가 만연해 있었다. 보스턴의 노예해방 운동가 웬델 필립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그 법들을 우리 발 아래 짓밟아야만 한다!” 보스턴의 노예해방 단체들은 그 법들을 “탄핵하고, 저항하고, 불복해야 한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로써, 우리는 그토록 비도덕적이고 비종교적인 노예제에 굴복할 수 없다.“며 공공연히 선언했다.

이런 분위기에 저항하듯, 1850년 10월 25일에 크래프트 부부를 잡아가기 위한 보스턴에 도착한 추노들은 짐짓 허세를 부리며 ‘보스턴에 영원히 기다려야하더라도 그리할 것이며, 노예들을 잡아갈 사람이 충분치 않다면 남쪽에서 데리고 올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보스턴에 겨우 닷새 체류했으며 아무도 지원하러 오지 않았다. 크래프트 부부가 참석하던 교회의 목사 시오도어 파커는 엘렌을 자기 집에 숨겼고, 스스로는 늘 리볼버 권총을 소지했다. 윌리엄은 또 다른 노예해방론자의 집에 가 두 통의 화약통과 수정의 화기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지역 자경단체들은 문제의 추노들의 생김새를 묘사하며 경계를 요하는 포스터를 도시 각지에 붙여놨으며 그들이 모습을 나타낼 때마다 조롱하고 위협했다. 10월 30일에 추노들은 당장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안위와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경고까지 받았으며, 이들은 결국 그 날 오후 당장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떠났다.

[목사 시오도어 파커]


이 사건에 당시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는 공식적으로 보스턴 시민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동시에 도시의 법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연방군을 파견하겠다고 위협했으며, 크래프트 부부의 원 주인에게 만약 도움을 청한다면, 정부와 의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조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서신까지 보냈다. 그러나 필모어 대통령이 수선을 피우고 있는 동안 이미 크래프트 부부는 보스턴 자경단의 모금후원을 받아 이미 노예제가 없는 영국행 배에 몸을 싣고 떠났다. 직후 보스턴의 파커 목사는 백악관에 편지를 써 “내 생애를 감옥 바닥에 누워 굶으며 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교구민Parishioner들을 보호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겠소. 나는 어떤 결과가 올지라도 하느님의 법을 숭배할 것이오.“라고 대통령을 도발했다.


[필모어 대통령]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51년 2월에는 그 전해에 버지니아에서 탈출해 왔던 탈주노예 샤드라크에 관련되어 일이 또 터졌다. 그는 보스턴의 어느 커피숍에 웨이터로 취직했는데, 마침 그를 잡으러 온 추노들이 커피숍에 들어와 그들에게 서빙하던 중에 붙잡힌 것이다. 추노들은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해 샤드라크를 서둘러 보스턴의 연방법원에 데려 갔다. 즉각 반응한 보스턴 시민들은 법원 건물 앞에 모여들었다. 주 정부와 주립 관공서들이 협조를 거부했기에 샤드라크를 임시적으로 가둬둘 곳이 없어지자 한줌밖에 안되는 연방 보안관들이 그를 데리고 있었으나, 얼마 안가 일군의 흑인들이 법원 안으로 쳐들어와 보안관들을 무력화시키고, 샤드라크를 데리고 나가 서둘러 캐나다로 보내버렸다.

샤드라크가 캐나다 몬트리얼에 무사히 도착해 거기서 후원자금으로 식당을 개업하고 있는 동안, 미국에서는 정치적 폭풍이 일었다. 노예 해방론자들은 축배를 들었고 예의 목사 파커는 “1773년 차 파괴 사건 이후 보스턴에서 벌어진 가장 고귀한 일이었도다”며 추켜세웠으나 좀 더 보수적인 여론은 샤드라크 사건을 ‘폭도의 승리’라며 야유했다. 탈주노예 법안을 강제하기 위해 필모어 대통령은 보스턴의 지방검사에게 명령해 샤드라크 사건에 가담한 관련자들을 전부 색출해 처벌할 것을 명령했다. 조사결과 네 명의 흑인들과 네 명의 백인들이 범법자로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배심원들이 유죄선언을 일치해 거부했다. 노예해방론 옹호 언론들은 “매사츄세츠는 아직 안전하다! High-Law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며 보스턴 시민들의 의기를 찬양했다. 하지만 그에 반하는 역풍은 거셌다. 연방정부는 곧 보스턴에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7세의 어린 노예 소년 토마스 심즈는 1851년 2월 죠지아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화물선 짐칸에 몸을 싣고 탈주에 성공, 곧 한 식당에서 웨이터로 취직한다. 심즈의 주인은 그를 추적하는데 성공했으며 이 건에서 보스턴 시장은 보스턴 시경이 연방보안관들의 지휘를 따르도록 하였다. 또한 공무원들은 이번에는 보스턴 연방법원을 무거운 쇠사슬로 꽁꽁 잠가놓고 주 민병대와 경찰들을 투입해 경비를 서게 한 채 심리를 진행했다. 1851년 4월 총 9일 동안 노예해방주의 자경단측 변호사들이 하베아스 코르푸스를 적용하여 심즈를 석방하게 하려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연방 판무관은 원주인에게 연락한 후 300명의 보안관들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심즈를 연방 해군 군항까지 호송한 후, 거기서 다시 250명의 연방군의 호위를 받아 주인이 기다리는 남쪽으로 ‘배송’되었다.

이후 보스턴의 상류 상권계층이 나서서 보스턴의 법치질서를 옹호하고 나섰으며 보스턴의 노예 해방론자들은 여론에 의해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더 이상 탈주 노예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는 보스턴도 위험하다고 여기게 된 탈주노예들이 보스턴이 아닌 다른 곳으로 흩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곧 지금까지의 평화주의적 방법을 버리고 더 과격한 수단으로 노예 해방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주 흑인들의 지도자였던 프레데릭 더글라스는 ‘납치범’(즉, 추노를 의미한다) 몇 명이 죽어야지만 탈주노예법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주장까지 했다. 무력시위를 주장한 자들 중에는 매사츄세츠 주 보스턴 인근의 스프링필드에 살던 양모 상인 존 브라운도 있었다.

이러한 당대 보스턴의 분위기와 이 일련의 사건들은 얼마나 노예해방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는지, 또 그와 동시에 '연방유지'를 위해 연방정부가 얼마나 남부 편을 들려 했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예제 폐지주들에 남부의 노예 소유주가 마음대로 추노들을 파견하여 탈주노예를 잡아오게 하고, 또한 주정부가 그 과정에 협조하게 한다는 '탈주노예 법'Fugitive Slave Laws이 얼마나 실제로 지켜지기 어려웠고 또한 말도 안되는 법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남부'의 권한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남부에서 그리 내세우고 중요시하던 '연방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주정부가 자유로울 권리'를 북부 주들에서 마구 침해한 것도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참조:
McPherson, James M. 1988. Battle cry of freedom: the Civil War er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otter, David Morris, and Don E. Fehrenbacher. 1976. The impending crisis, 1848-1861. New York: Harper & Row.

덧글

  • 진성당거사 2012/01/31 08:15 #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예전에 꽤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크래프트 부부가 쓴 (것으로 알려진) "Running a Thousand Miles for Freedom" 을 한 번 읽기도 했었구요.

    언제나처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크핫군 2012/01/31 08:27 #

    Old John Brown’s body lies moldering in the grave,
    While weep the sons of bondage whom he ventured all to save;
    But tho he lost his life while struggling for the slave,
    His soul is marching on.

    John Brown was a hero, undaunted, true and brave,
    And Kansas knows his valor when he fought her rights to save;
    Now, tho the grass grows green above his grave,
    His soul is marching on.

    He captured Harper’s Ferry, with his nineteen men so few,
    And frightened "Old Virginny" till she trembled thru and thru;
    They hung him for a traitor, they themselves the traitor crew,
    But his soul is marching on.

    John Brown was John the Baptist of the Christ we are to see,
    Christ who of the bondmen shall the Liberator be,
    And soon thruout the Sunny South the slaves shall all be free,
    For his soul is marching on.

    The conflict that he heralded he looks from heaven to view,
    On the army of the Union with its flag red, white and blue.
    And heaven shall ring with anthems o’er the deed they mean to do,
    For his soul is marching on.

    Ye soldiers of Freedom, then strike, while strike ye may,
    The death blow of oppression in a better time and way,
    For the dawn of old John Brown has brightened into day,
    And his soul is marching on
  • 모튼 2012/01/31 09:17 #

    존 브라운의 시체로군요. 나중에 찬송가가 되었다는.
  • 초효 2012/01/31 10:10 #

    크래프트 부부와 비슷한 탈출법이 '엉클톰의 오두막'에 나오지요.
    저렇게 탈출시켜 아프리카로 되돌아간 흑인들의 일부가 '라이베리아'를 건국했는데, 거기서 지주가 된 해방자들이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죠.(국명은 폼으로 지은 듯...)
  • 파파라치 2012/01/31 11:30 #

    1. 미국 역사를 보면 만행도 많지만, 그 이면에서 저항하고 투쟁한 사람들도 많아 암울하지만은 않은듯. 그리고 미국인들의 자부심에 부합하게,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이 삶을 송두리째 희생당할 필요는 없었다는거.

    2. 샤드라크 재판은 배심원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를 잘 대변해 주는 듯 하네요.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1/31 11:49 #

    여러가지 일이 있었군요.
  • RuBisCO 2012/01/31 13:46 #

    재미나네요. 신대륙판 추노라..
  • 카시우스 2012/01/31 19:16 # 삭제

    이런걸 볼 때마다 미국의 프로파 갠더인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 라는게 허언이 아니라는게 느껴집니다. 동 시대 조선에서 추노꾼들을 저렇게 취급했다간... '반역도'로 몰려서 작살나겠죠?
  • gforce 2012/01/31 20:11 #

    그러므로 월토는 에릭 플린트의 Trail of glory 시리즈를 읽습니다!

    어쨌든, 자네들을 CSA 라고 자칭했던 반란분자 놈들의 "독립선언서"를 보면 참 재밌지. "연방정부는 노예제를 수호할 생각이 없고 노에제를 말려죽이려 한다능 징징징 이건 주권침해라능 징징징." 근데 남부 수정주의자 놈들은 사실 그다지 관계도 없는 관세 문제니 재정문제니 들먹이면서 "노예제 때문이 아니라능! 주의 권리를 위해서였다능! 연방정부의 압제에 항거한 거라능!" 이라고 헛소리하고 실제로 저딴 유사역사관이 교실에서 정식 역사로서 취급받고 있지. 멍청한 놈들. 니들 "독립선언서"나 읽어보라고. 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관세 어쩌구 얘기가 나오나.
  • net진보 2012/01/31 21:11 #

    미국에도 추노꾼?1이있긴햇군요...
  • 누군가의친구 2012/01/31 22:18 #

    추노꾼이라...
    미국판 추노꾼을 연상하려니 왠지 상상하면 안될것 같습니다.(...)
  • 행인1 2012/01/31 23:25 #

    1. 육혈포를 품에서 놓지 않는 목사님이라니...

    2. 노예제 유지와 노예제 폐지 간의 갈등은 나중에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시절 이런저런 정치절 갈등 끝에 켄자스에서 폭발합니다. 주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가 엎어지고 나서 켄자스 주정부라고 서로 주장하는 두 집단과 그 지지자들이 거의 내전 수준의 유혈충돌이 벌어집니다.(존 브라운도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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