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해방론자들에 대한 비판



보스턴 시민들의 의로움을 한껏 칭찬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찬가지로 그들에 대해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시각으로 한번 노예 해방론 진영이 가졌던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자.



노예해방론자들은 정치적 의사나 정치 의결 과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윌리엄 개리슨의 경우처럼 순진한 바보들처럼 굴거나 아니면 존 브라운 처럼 광신적인 극단주의 살인마로 거듭나거나 하는 식이었다. 특히 존 브라운은 성인으로 추앙받으나 실상은 아무 상관도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밤중에 쳐들어가 침대에서 처참하게 쳐죽여 살해한 미치광이 살인마일 뿐이다. 그는 실질적으로는 노예해방이나 흑인 인권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노예 해방운동의 이름에 악명과 반감만을 더해줬을 뿐이다.

그렇게 미화되고 또 중요도가 평가받는 탈주노예 지원체제 '지하철도'도 실상은 노예해방 또는 흑인인권 보호에 미미한 영향만을 끼쳤으며 수십년의 기간 동안 지하철도를 통해 도움을 받은 탈주 노예의 총 수는 전체 노예 인구수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는 수인 3만명에서 4만명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지하철도 운동은 지나치게 미화되었으며 그 활동이 후대에 프로파간다적으로 부풀려진 경향이 크다. 또한 1839년부터 인 신생 'free soil' 운동은 노예해방론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었는데, 남부 농가에 적대적이며 동시에 흑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적 적대감을 가진 북부 자산가들이 북부 상권과 경제적 이득을 보호하기 위해 동조의 뜻을 표한 경향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래 글에서 라이베리아 얘기를 언급한 분이 있는데, 라이베리아와 라이베리아로의 흑인 이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 이 부분을 강조해서 적겠다.

라이베리아로의 해방노예 이주를 주장한 백인들의 '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줄여서 ACS)는 더더군다나 어두운 존재였다.비록 그 설립자의 설립 목적만큼은 숭고했을지는 몰라도 해방노예의 아프리카로의 '역' 이주를 후원한다는 명목하에 이들은 인종차별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었으며 실제 흑인들의 인권이나 삶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ACS는 오히려 남부의 노예제 옹호론자들과 노예 소유주들에게서나 호감을 샀다. 해방된 자유 흑인들이 오히려 사회에 해악을 끼치거나 다른 노예들을 선동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조성된 덕이었다. 실상 ACS는 해방된 값싼 흑인 노동인력의 유입을 원하지 않던 북부인들과 해방된 흑인들의 사회불안 조장을 원하지 않던 남부인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간 인종차별주의 친노예제 단체였으며 그 ACS의 힘으로 설립된 라이베리아는 최악의 인종차별국가로 거듭난다. 전체 인구의 4%밖에 안되는 미국 출신 해방노예 이민자들이 원주민 아프리카인들을 차별하고 노예처럼 학대한 현장이 되었다. 백인 인종차별주의로 인해 설립된 국가의 한계였다. 정작 대다수의 미국 흑인들, 해방노예들은 자신들이 아프리카로 보내져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백인우월주의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라고 여겨 라이베리아로 이주하기를 거부했고, 미국을 자신들의 힘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정착해서 살아가야 할 고향으로 여겼다. 다시 말해 라이베리아는 결코 미국 해방 노예들의 지지나 동의로 인해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다.


노예 해방론자들은 대다수가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운동에 참가한 기독교 신자들이었고 여기서부터 그들의 한계가 드러난다. 노예제 폐지 문제를 놓고 이들은 논리적 이성적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종교적 도덕관념주의에 입각하여 단순무지하게 덤벼들었다. 이들은 대게 사회현실과 역사와 제도와 인간 본성과 인종차별주의의 본질과 남부의 노동경제구조 등에 대해 무지했거나 완전히 무시하기 일수였고, 무엇보다도 정치 구조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사회와 체제를 바꾸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치 프로세스를 무시한 결과 이들 해방론자들은 실질적인 결과를 얻어내는데 종종 실패하곤 했다. 이들은 신앙에 입각한 독선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완고함으로 '사실에 기반을 둔 논리를 통한 토론'이라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였고 오히려 아우성을 통해 정치 프로세스를 마비시켰다.

19세기 중반에 노예 해방론자들은 그 반대측에 선 노예제 옹호론자들과 함께, 서로 비정치적, 비논리적이고 대중적인 데마고그와 프로파간다적 선동으로 마구 충돌해대면서 공화국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마비시키고 무용화시켜버렸다. 끊임없는 토론과 숙고와 논쟁을 통해 차이점을 해소하고 체제를 개선하는 절차를 전혀 밟지 않은채 감정과 신앙에 근거한 아우성Clamor만을 내세운 덕에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부의 자유 흑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건 신앙심과 정의감에 불타는 해방론자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닌, 일자리를 구하고 또 기술 훈련, 전문직 훈련을 받아 직업을 갖고 정착하는 문제였다. 많은 흑인들은 이렇게 묻곤 했다. "왜 주도적인 노예 해방론자들은 정작 스스로는 우리 흑인들을 취직시켜주는데는 인색한가?" 실제로 많은 수의 해방론자들은 1센트 단위까지 째째하게 구는 인색하고 위선적인 중산층 자산가들이기 십상이었고 대부분 실질적으로 경제적/사회적인 의미에서 해방노예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는 모른척했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의 '신실한 의무'는 흑인들을 노예제라는 부도덕한 사회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지, 흑인들과 함께 어울려 개인적으로 교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하곤 했다.

이에 대해 흑인 지도자들은 자조적으로 '우리 백인 '친구'들은 남쪽의 악인들을 비난하는데 시간을 다 뺏긴 나머지 바로 자기들 옆에 있는 북부의 흑인들의 곤경과 궁지를 둘러볼 여유가 없어져버린 모양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런 부분에서 노예 해방주의 백인들의 엘리트주의, 인종차별주의, 위선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노예해방론자들이 실제로 성심성의로 노예해방과 흑인인권향상을 지지하고 이를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하고 운동을 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사실만으로 그들이 거둔 미미한 성과와 가시적 해악을 가릴 수는 없다. 그들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들에 대한 과도한 미화는 지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선편에 선 선의를 가진 선인들일지라도 얼빠진 실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정의구현을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정의의 편에 섰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또 그래서 논리와 진실에 기반을 둔 토의와 현실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어떠한 선행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마지막 문단은 미국내전사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며 노예제 옹호론자들과 해방론자 양자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동시에 극단적 우익사관과 극단적 좌익사관 양자를 깎아 내리면서 하신 말씀을 좀 정리해 본 것인데, 참으로 격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이다. 이는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물론 노예해방론자들에 대한 본 시각은 전적으로 옳다고만 받아들일 수는 없으며, 합당한 시각임을 인정하되 다양한 해석을 복합적으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덧글

  • 모에시아 총독 2012/02/01 08:40 #

    붉은 색으로 쓰신 문단은 저도 참 와닿는 군요. 월광아저씨께서 쓰신 글을 보다보면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는 사실을 참 절절히 깨닿게 됩니다.
  • 아브공군 2012/02/01 08:44 #

    저 빨간색으로 된 부분을 보니 생각하는 명언이 하나 있군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marlowe 2012/02/01 08:52 #

    늘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요즘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예요.
  • 유진 로 2012/02/01 08:53 #

    동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깨달음이네요.
  • 검투사 2012/02/01 09:14 #

    지하철도 분들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단 저분들의 활약은 1860년대 중반, 그러니까 연방군이 승리할 때까지는
    계속 되었을 테니까요. 아무튼 저런 분들의 활약이 "지나치게 찬미받는 것"이라면
    오스카 쉰들러나 존 라베, 스기우라 치우네 또한 과한 칭찬을 받고 있는 셈이죠.
  • 검투사 2012/02/01 09:17 #

    빨간 부분 관련해서는, 자신들이 인권을 옹호한다면서
    막상 피해자들의 입장이나 심정은 생각 않고, 자기들 멋대로 사형수들을
    "용서하고, 용서를 강요하며(기실 딸을 죽인 범인을 용서한 아버지를 들먹이며),
    일부러 교도소까지 찾아가 안아준다고 트위터에도 올리는" 분들이 생각나는군요.
    더 웃낀 건 사형수들을 안아준다는 그분이, 자신에게 비아냥질 하는 나꼼수 광팬들을
    고소하겠다고 트위터에 올린 거라능... -ㅅ- 이래서 좋은 일 하는 대다수 분들이
    일반인들에게서 그 진의를 의심받거나, "과한 칭찬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요?
  • Powers 2012/02/01 09:53 #

    격하게 동의합니다.

    좀 다른 예이지만 프랑스 혁명 때 발생한 문제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위에서 지적하는 오류들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국내에서는 아직 역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부분은 덮고보는 식이라 아직 많이 연구와 발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Mr 스노우 2012/02/01 09:58 #

    잘 읽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동감합니다.
  • 허안 2012/02/01 10:27 #

    진보주의자로서 빨간부분 명심해야 하겠군요. 저 역시 말입니다.
  • 초록불 2012/02/01 10:33 #

    유익한 내용, 잘 보았습니다.
  • 유리멘탈 2012/02/01 10:37 #

    백인의 엘리트주의와 이렇게 결합이 되어있었군요..
  • 긁적 2012/02/01 11:03 #

    이거야 말로 이오공감 가야 할 내용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 긁적 2012/02/01 11:06 #

    역시나 다양성정책 -_-.......
  • 빼뽀네 2012/02/01 11:12 #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번 글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던 문제점들을 이번 글에서 분명하게 다뤄주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 다능 2012/02/01 11:23 #

    맨 마지막에 그 교수님이 양쪽을 싸잡아 비판했던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는 우리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비판할 수 있지만
    과거에 노예가 존재했을 때 이렇게 양쪽을 깠다간 양비론이라고 몰릴것 같네요.
  • 로자노프 2012/02/01 11:35 #

    정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셔먼 2012/02/01 11:41 #

    어떤 일에서든 무턱대고 감정에 휩쓸리다간 피만 보는 셈이죠. 유익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차원이동자 2012/02/01 12:45 #

    기분 묘해지는 글이군요. 잘 읽었숩니다
  • wasp 2012/02/01 13:00 #

    잘 봤습니다

    붉은색 문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단이 아닌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군요
  • lita 2012/02/01 13:05 # 삭제

    지하철도를 통해 도움을 받은 탈주 노예의 총 수는 전체 노예 인구수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는 수인 3만명에서 4만명 사이로 추정
    -> 1860년 노예인구가 4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정도면 별 의미없다고 치부하기에는 아주 큰 규모죠. 거의 1% 가까이 탈주시켰으니 말입니다. (노예제의) 경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규모이긴 합니다만 정치적인 효과는 확실할 정도죠.
  • CAL50 2012/02/01 14:13 # 삭제

    한 해에 3만명이면 대단한 수준이겠지만 그것이 수십년에 걸쳐 이워진 점을 감안해야겠지요.
    결국 매년 실제 탈출시킨 숫자는 잘해야 수천명이라는 이야기이고, 유입되는, 혹은 출산등으로 자연증가되는 노예 인구를 감안하면 남부의 노예 인구 구조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을 듯 합니다.
  • 월광토끼 2012/02/01 14:38 #

    바로 그겁니다. 3~4만명이란 수치는 수십년간 동안의 총합입니다. 의미 없는 숫자인건 맞습니다.
  • lita 2012/02/03 17:32 # 삭제

    한 해에 3만 수준이면 그 수십 년 세월이면 노예의 태반이 사라졌죠. 노예해방을 단박에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인구 구조와 경제적인 면에서 영향은 별로 없지만 정치적인 파괴력은 그와는 또 별개의 문제로, 수십 년에 걸쳐서라도 3-4만의 인원을 탈주시킨 그 노력 자체가 일으키는 사회적 반향과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노예해방에 대한 담론을 확대재생산하는 최고의 프로파간다인 거죠. 숫자만 작다고, 또 인구 구조나 경제적인 효과가 거의 없다고 마냥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 수는 없는 거죠.
  • 카시우스 2012/02/01 15:28 # 삭제

    하지만 잠시 인구상의 퍼센테이지를 떠나서 '사람 3~4만명'이라고 접근하면 의미없는 숫자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요. 지하 철도 사람들이 나름대로 선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흑인 해방에 대한 상징성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독립군이 정작 우리나라 광복에는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를 물어본다면 그건 영... '둘 다 문제가 있었다'는 대게 후대의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이지 직접 현실과 맞대며 살아가던 당대 인들의 삶에선 이도저도 아닌 양비론으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수십년간 3~4만명의 사람들을 구한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소위 말하는 역사적인 시각) 흑인 해방의 첫 걸음이였다는 상징성 역시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결코 무시될 수 없는 한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역사적인 시각이 아니라 그 때의 시각으로 본다면 일년에 수천명의 노예가 최초의 자유를 얻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테고요.
  • aubrey 2012/02/01 16:40 # 삭제

    정신이 번쩍 드는 소재와 시각이었습니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위의 카시우스님의 답글과 비슷한 rudgid이긴 합니다만. 혹시 위에서 언급하신 시각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입을 놀리기 전 배워야 할께 참 많구나 싶은 생각만 드는군요.
  • blesshy 2012/02/01 20:20 #

    또 하나의 '의도는 좋았다' 수준이군요.
    (그 의도마저도 조악한 수준이지만서도)
  • 행인1 2012/02/01 21:40 #

    1. 지난번 덧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존 브라운은 '유혈의 켄자스' 사건때 아주 맹활약하고 나중에는 무려 하페스 페리 무기고를 점거하려다가 붙잡혀 교수형되죠.

    2. 185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노예제 문제가 도로 중대한 정치적 문제가 된 이유는 그전까지 일종의 경계선이자 타협안 구실을 해오던 '미주리 협정'이 정치적 거래에 따라 사실상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거래를 이끈 사람 중의 하나가 스티븐 더글라스입니다.(왜 했느냐면 대륙횡단철도 노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고 남부 출신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 나중에 대통령도 하고 싶어서라나요?)

    3. 노예제 반대외 관세 등의 기타 이슈로 1856년 미국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신생 정당이 하나 탄생합니다. 바로 '공화당'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2/03 03:45 #

    노예해방론자의 또 한편의 이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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