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리 그레이블리 쥬니어의 생애 약사

1875년 3월 1일에 율리시즈 S. 그랜트 대통령은 그 몇 주전 의회에서 통과된 소위 'Civil Rights Act'에 서명했다. 흑인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불법화하고 흑인을 백인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강제하는 법안이었다. 물론 그 법안에는 실효성이 없었다. 법안 발효 후 근 1세기나 지나서 동명, 동 내용의 법안이 재 상정되어 통과되었을 때서야 그나마 간신히 실질적인 진보가 있었다.

미해군 역사상 최초로 흑인이 장교가 된 것도,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나 되어서의 일이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백인들처럼 지휘관의 자격을 갖게 된 그 장교들 중 한 명의 군력은 그 사회적 '진보'를 대변하는 의미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Samuel Lee Gravely Jr. 1922~2004.


사무엘 리 그레이블리 쥬니어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1922년 6월 4일 태어났다. 그레이블리는 남부 흑인들 중에서도 그나마 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는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미국 내전 직후 해방노예들의 고등교육을 위해 설립된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할 수 있었다. 그가 대학교 2학년생이었을 때 진주만 공습 사건이 벌어졌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그레이블리는 미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해군에서 그에게 준 보직은 기관사 보조였다. 그러나 한 장교가 대학생 또는 학사 학위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교육성 프로그램에 대해 그에게 언급해주었고, 그레이블리는 당장 시험을 치뤄 높은 성적으로 합격, 그 프로그램 (V-12 Navy College Training)에 흑인 장교후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레이블리 앞에는 열 세명의 흑인 사관후보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1941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방집행명령을 통한 공직 내 인종차별 금지 덕에 사관후보가 될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그 열 세명은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흑인 장교들로 'Golden Thirteen'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 열 셋 모두가 출세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최초의 흑인 사관들이 배출될 무렵에는 이미 전쟁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1944년 12월 14일에나 졸업하여 미 해군 예비군USNR의 해군소위Ensign로 임관한 그레이블리의 경우, 전장이 아닌 훈련소에 배치되어 해군의 신병 훈련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1945년 5월부터는 소형 대잠초계정 PC-1264의 장교로 해상 복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전쟁은 끝났고, 1946년 2월에는 PC-1264가 다른 많은 군함들과 마찬가지로 퇴역했으며 그레이블리 소위도 예비역으로 돌려졌다. 그는 고향의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했다.

그레이블리는 그대로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49년 트루먼 대통령은 군내 인종차별 철폐를 공식화했고 이를 통해 2차세계대전 때 배출되었던 흑인 장교들이 다시 현역으로 복귀되었다. 그리고선 곧바로 한국전쟁이 터졌다. 49년에 군에 복귀해 사무보직에 있던 그레이블리 소위는 일선임무에 투입되었고, 한국전쟁 동안 전함 '아이오와'에서 통신장교로, 이후 순양함 '톨레도'에서 복무했다. 그는 그대로 인생을 해군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1955년에 그레이블리 해군대위는 예비군이 아닌 정규 해군 장교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레이블리 쥬니어는 계속 군력을 쌓아나갔고, 1962년에 구축함 '팔구트Falgout'의 함장에 임명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함장이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4년간의 팔구트 함 지휘로 신뢰를 쌓은 그레이블리는 1966년 구축함 '터시그Taussig'의 지휘를 맡았고, '터시그'함의 함장으로써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어 실전까지 경험했다. 1968년에는 이르러서는 벨크냅 급 유도미사일 순양함 '주에트Jouette'의 함장에 임명된다. 순양함의 함장이 됨으로써 그레이블리는 '주력함을 지휘한 최초의 흑인'이 되었다. 그 결과, 1971년에 그레이블리는 해군 소장Rear Admiral에 임명되었다. 최초의 흑인 장교가 아니라 최초의 흑인 제독이 된 것이다. 해군 소장 그레이블리는 1971년부터 74년까지 해군 사령부에서 해군통신부장 Director of Naval Communications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1976년. 제럴드 R. 포드 대통령은 해군 소장 그레이블리를 중장Vice Admiral으로 승진시키고 미 해군 제 3 함대 사령관Commander of the USN 3rd Fleet에 임명한다. 하와이 진주만에 모항을 둔 백여척의 군함들과 6만여명의 수병들을 지휘하는 자리에 흑인 제독이 앉은 것은 당시로서는 일약 대사건이었다. (제 3 함대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가 모항이다) 그레이블리 제독은 이후 제 3함대를 2년간 지휘하고 나서 워싱턴 DC의 펜타곤에서 미국방 정보시스템국의 국장으로 근무하다 1980년에 퇴역한다. 그는 총 36년의 군력 동안 미군훈공장Legion of Merit, 청동성장Bronze Star Medal, 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 미해군표창훈장Commendation Medal 등을 수여받았다.

이후 그레이블리 제독은 매릴랜드에서 여생을 보내다 2004년 8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레이블리 제독의 군력이 순수히 그의 능력만으로 가능했을까? 인종평등대우와 인권확보를 위해 부르짖는 당대의 사회분위기의 덕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레이블리 제독은 '길'을 개척했다. 그 이후 미 해군에는 총 마흔 명의 흑인 제독들이 있었다. 현재 그 중 16명이 현역이다.



덧글

  • 2012/03/02 08: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2/03/02 09:15 #

    아아. 네.
  • dunkbear 2012/03/02 10:05 #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주간의 일환으로 미군 전체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중인
    것으로 압니다. 아마 2월 동안 그랬던 것 같네요. 미 공군 홈피에서 많은 흑인 출신
    의 항공계 선구자와 미 공군 조종사-장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요즘 올라오는 소식
    전하기도 바빠서 포스팅도 제대로 못하겠네요. (ㅠ.ㅠ)
  • 월광토끼 2012/03/02 11:33 #

    아, 이미 미군에서 그러는 중이었군요;;

    전 그냥 마음에 담아뒀다가 대충 3월 1일 즈음에 포스팅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지금 하는건데 ㅠㅠ
  • .......... 2012/03/02 11:45 # 삭제

    저분 참 후덕(이라쓰고 오덕이라 읽는다)하게 생기셨군요. -ㅅ-
  • 알파캣 2012/03/02 12:42 # 삭제

    훌륭한 군인이란 얼마나 모범적인 사람인가요. ^^

    무인이란 이름에 명예란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인것 같아요 ; )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
  • 모에시아 총독 2012/03/02 14:02 #

    멋진 이야기입니다 ㅜㅜ 요즘 막연하게 알고 있던 미국내 유색인들에 대한 차별과 그 극복을 월광아저씨 글을 통해 잘 배우게 되네요.
  • 시쉐도우 2012/03/02 18:54 #

    왠지 톰클랜시 시리즈의 그리어 제독님이 생각나는군요.
  • 셔먼 2012/03/02 18:56 #

    흑인들의 성공가도와 인종 평등에 대한 요구.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인종차별을 없애 나가기란 지극히 어려웠겠죠.
  • 누군가의친구 2012/03/03 01:18 #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위대한 개척입니다.
  • 행인1 2012/03/03 09:29 #

    첫번째 'Civil Rights Act'에 서명한 사람이 저 악명높은 그랜트였다니....orz
  • 대한제국 시위대 2012/03/03 13:49 #

    최초의 흑형... 아니. 흑인 제독이군요. 김영옥 대령 덕분에 나중에 일본계가 육군참모총장이 됐다는게 생각납니다. 2차대전 때 김영옥 대령하고 일본계들이 뼈빠지게 고생한 덕분에 아시아계가 많이 군문에 들어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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