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사 - 내전기 옥스퍼드와 캐임브릿지의 엇갈린 운명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첨언하자면, 옥스퍼드와 캐임브리지는 본디 각각 수많은 College들의 집합체였지, 하나의 ‘옥스퍼드 대학’ 이라던지 ‘캐임브리지 대학’ 같은 건 없었다.*

[캐임브리지, 퀸스 칼리지]



1642년, 국왕과 의회가 갈라서고 영국 내전이 터지자 캐임브리지에서는 내전초기 국왕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활동이 일었고, 국왕 스스로도 대학들에게 자금 원조를 요청하는 서한들을 보냈다. 그러나 의회파의 보복을 두려워 한 나머지 선뜻 돈을 내놓은 학교들이 몇 없었고 내놓은 학교들도 자금을 많이 풀지를 않았다. 돈을 많이 내놓았다 하더라도 이것이 국왕에게 제대로 도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캐임브리지 지역구 의원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은 캐임브리지로부터의 자금 출자를 막기 위해 일군의 용기병대와 보병대를 이끌고 캐임브리지에서 가장 부유하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로 내달려 학교를 점거했고, 이를 본 다른 학교들은 당연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영국 내전기 동안 캐임브리지에서 국왕 충성파는 험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국왕에 동조적이던 총장이 세 명이나 체포되어 런던으로 압송 당했고, 국왕 지지자로 소문이 난 교수들은 길거리에서 야유와 오물 세례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교내 사제는 라틴어로 미사를 봤다가 -다시 말해, 카톨릭적으로 미사를 봤다가- 꼬투리가 잡혀 공격받았으며, 의회에서 파견된 감사관이 세금을 요구했을 때 거부했던 킹스 칼리지 부총장과 학장들은 물도 음식도 없이 지하에 며칠간 감금되었다. 전반적으로 캐임브리지의 대학들 전체에서 총 12명의 총장들과 181명의 학장, 교수들이 직위 해제되어 추방되고 죄다 독실한 청교도들로 대체되었다.

특히나 퀸스 칼리지Queen's College가 큰 재해를 입었는데, 의회파의 요구로 인해 학교의 총장 학장 임원 할 것 없이 교수진 전원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해고된 것은 물론이오 많은 수가 구속 수감되거나 추방되었다. 총장 에드워드 마틴은 이후 4년간 수감되어 살았고 그 자리는 국왕에 대한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책자를 써 유명해진 청교도 허버트 팔머가 대체했다.

하지만 퀸스 칼리지가 겪은 난은 이 정도가 다가 아니었다. 미신이나 우상숭배를 형상화한 어떠한 종료의 조형물도 다 파괴할 것을 지시한 의회 법령에 따라, 퀸스 칼리지 내에 있던 모든 촛대, 십자가, 기타 장구들, 고급스러운 탁자들과 예배단 등 모든 것이 다 박살났다. “우리는 한 110여개쯤의 미신숭배스러운 그림들과 조각들, 천사상들을 파괴고, 건물 내 계단들을 파내 없애느라 세 시간쯤 보냈으며 열 개나 열 두 개 정도의 사도와 성자들의 성상들 부쉈다.”고 의회에서 파견된 감독관은 기록했다.

곧이어 캐임브리지 전역에서 소위 ‘아이코노클라즘’ 행위가 벌어졌다. 성상이나 성화가 파괴되고 불태워졌으며 스테인드 글라스들은 모조리 남김없이 산산조각 났고 예배당들은 모두 깨끗이 치워진 후에는 병영이나 창고, 또는 감옥으로 전환되었으며 대학 정원들에 조성되어있던 나무들은 모조리 베여져 외곽진지 구축에 사용되었다. 대학에서 보관해오던 오래된 유물이나 중세에 주조된 금화들은 전부 팔리거나 녹여져 재사용되거나 하였다. 교회나 신앙 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미술품들도 죄다 우상숭배로 몰려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는 단순히 캐임브리지에서만 행해진게 아니라 전국에서 행해졌지만 대학들, 다시 말해 수도원들이 한데 몰려있는 거나 다름없던 캐임브리지의 피해가 가장 극적이었고 또 심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옥스퍼드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피해를 입었다. 옥스퍼드는 영국 내전의 상당 기간을 국왕의 공정이자 작전본부로써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군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상류층과 그들의 식솔들이 모두 옥스퍼드에 집중되게 되었는데, 문제는 옥스퍼드가 그런 많은 인구를 지탱하도록 되어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옥스퍼드는 대학 도시였으며 학자들과 사제들이 가득했었으나 이들은 곧 이들이 볼 때 퇴폐적으로 보일 사치와 향락행위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전쟁 중이었고 또 그럴 계제가 아닌 것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상류층 가솔들은 옥스퍼드에서 전쟁 전처럼 생활하려 했고 이들이 벌이는 잔치등은 대학을 많이 어지럽혔다. 많은 인구가 쏟아내는 쓰레기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옥스퍼드 곳곳에 쓰레기와 오물이 쌓였고 군대와 전쟁 난민들이 늘어나면서 거주할 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옥스퍼드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을 공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또한 기존의 학생들이나 그 외 시민들과 새로 들어온 외부인들 사이에 갈등이 표출해 폭력 사태도 종종 벌어졌다. 이러한 갈등은 옥스퍼드 시민들이 왕의 전쟁 자금 마련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게 됨으로써 더욱 심화되었다. 그나마 캐임브리지같이 아이코노클라스트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옥스퍼드도 전쟁 말기에 의회군이 진주 점령하게 됨으로써 뒤늦게 화를 입었고 교수진이 갈려나가긴 했다.


[옥스퍼드, 오릴 칼리지]

덧글

  • TBSH 2012/05/18 10:51 # 삭제

    탈레반의 원조군요. 학생들을 때린단 점에선 뭔가 뒤바뀐것 같지만
  • 월광토끼 2012/05/18 14:43 #

    올리버 크롬웰로 흔히 상징되는 극렬 청교도는 뭐 현대의 탈레반 못지 않지요
  • 迪倫 2012/05/18 10:56 #

    호오, 재미있네요. 그래서 이 두학교의 컬러가 약간 달라지는 것이었을까요?
    아무튼 앞으로 다시 영국사 얘기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월광토끼 2012/05/18 14:44 #

    감사합니다. 물론 두 학교의 정서가 다름은 이 전부터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 행인1 2012/05/18 11:40 #

    교수진 탄압과 미술품 수색&섬멸이라니 '문화혁명'이 따로없군요.-_-;;
  • 월광토끼 2012/05/18 14:46 #

    카톨릭=문화=예술=향락=타락=절대악 이라는 식으로 주장한 광신적 개신교도들이 당대에는 꽤 풍부했기 때문입죠
  • 로자노프 2012/05/18 14:17 #

    난세가 되면 항상 학자들이나 예술이 된서리를 당하는 법이죠...
  • 월광토끼 2012/05/18 14:47 #

    예술=카톨릭적 우상숭배 로 받아들여진게 참 무섭지요.
    물론 학자들도 그 학자 성향에 따라 온전히 살아남거나 오히려 더 득세하기도 합니다만
  • M-5 2012/05/18 14:41 #

    그런데 당시의 대학교들에는 보관된 자금이라거나 자산 같은 게 많이 있었나요?
    프로파간다 같은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자금 문제 때문에 대학에 손을 뻗쳤다는 것이 조금 놀랍네요..
  • 월광토끼 2012/05/18 14:48 #

    그럼요. 대학들이 부자였지요. 부동산만 해도 엄청난데 현물 자산도 가득.
  • 누군가의친구 2012/05/18 15:39 #

    종교가 사회에 안정을 가져다 준다고들 하지만, 여러 파괴 행위들을 보면 전 그 안정에 대해 인정할수가 없더군요.
  • Mr 스노우 2012/05/18 16:25 #

    하지만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은 내전이나 혁명은 일상이 아니라 상당히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영국 내전은 17세기라는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지만, 가톨릭 교회는 유럽의 일상을 천 년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도 특수한 상황 하나만을 보고 '종교는 안정이 아니라 파괴의 도구다'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상당히 성급한 결론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영국내전은 시대적 상황상 종교가 주요 동력이 되었지만, 종교가 혁명 세력의 주요 동력이 아니었던 프랑스 혁명에서도 각종 예술과 문화에 대한 마구잡이 파괴가 일어났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 rhdxogns 2012/05/18 16:47 #


    인간이 만든 사상이나 철학가운데 악용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굳이 종교만 오명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비판하려거든 종교 교리 자체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해야지, 종교의 해악을 가지고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5/18 21:29 #

    난세가 되니 지식과 예술이 수난을 당하는 군요. 저때 파괴된 것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 셔먼 2012/05/26 10:26 #

    1566년 네덜란드 독립전쟁 중에 일어난 우상 파괴 폭동을 보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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