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의 성형요새(星形要塞) 또는 보방식 요새들

*보방이 최초 창시자도 아님에도 Star-fort가 사전에 없는지라 많은 이들이 보방식 요새라 부르는 Star Fort. 그렇다고 그냥 '스타포트'라고 써버리면 스타크래프트 용어-_-가 되어버리니 그냥 직역해 성형요새라 쓴다. 일본의 번역어 용어 또한 직역으로 성형요새다.

성과 요새는 비록 소소한 발전이 있었다고는 하나, 꽤 긴 세월동안 중세 초기에서 후기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원형 또는 원을 이루는 다각형 형태의 성들. 이러한 방어전술, 축성기술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하게 된 것은 화기의 위력과 그 사용이 급증하는 15세기 말과 16세기 초부터다. 보다 대포에 강하게 견딜 수 있으면서도 방어자의 사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16세기 들어 원시적 형태의성형 요새들이 등장하고, 16-17세기 기술자들 (특히 프랑스의 거듭된 침공에 대항하려 고심한 이탈리아 기술자들)에 의해 결국 별 모양을 이루는 삐죽삐죽한 방어선을 갖추는 요새 축성 방식이 만들어졌다.

이 'Star Fort'를 완성적으로 다듬어낸 뛰어난 기술자는 보방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인들이었고,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프랑스 땅에 수많은 '보방식' 요새진들이 구축되었다. 파리 방어선, 프랑스-벨기에 국경선, 알자스-로렌 방어선 등등. 보방의 요새 방어선은 프랑스 육군이 야전에서 불리하더라도 적이 이를 활용하기 어렵게 발을 묶고 지연시키는 훌륭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희대의 명장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이 이끄는 영국-네덜란드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회전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두면서도 그 승리들의 세를 몰아 진격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보방이 구축해 놓은 방어선의 위력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요새 축성 방식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곧 유럽 전역의 국가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또한 그 식민지들에도 마찬가지로 성형요새들이 잔뜩 만들어진다. 그 결과 유럽 전역,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미형의 성형요새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영국은?



영국은 성이 아주 많은 나라다. 거친 웨일즈, 거친 스코틀랜드, 거친 아일랜드를 복속시키려는 잉글랜드의 수세기 간의 노력은 국경지대와 점령지역에 수많은 성채와 요새를 건설하는 것으로 표출되었고 그 결과 고풍스러운 중세 성채들은 오늘날까지도 브리튼 섬의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성들은 어디까지나 중세의 유물, 버려진 폐허들일 뿐이다. 브리튼 섬이 잉글랜드에 의해 '통일' 되고 나서는 내륙의 성채들을 개선하거나 보수 유지 할 이유도 재원도 부족했다. 그나마 주요 항구와 도시들에 만들어졌던 많은 방어 구조들은 19세기 중반 영국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밀렸'다. 그 결과, '브리튼' 했을 때 성형요새를 떠올릴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건 아니다. 대륙에서 축성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영국에서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란 말이다. 주목할만한 몇몇 근대적 성형요새/다각 방어진지들, 또는, 요새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브리튼 섬에 남아있다. 그 중 몇몇을 추려 소개해 본다.

*여기서 근대적이라 함은, 굳이 '보방식'에 한정 짓는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북부 노섬벌랜드 카운티의 베릭 우폰 트위드Berwick-upon-Tweed.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 성벽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찰스 2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요새가 들어섰다.




잉글랜드 남부 햄프셔 지방의 항구도시 포츠머스Portsmouth.
헨리 8세 치세에 기초방벽이 마련되었고 18세기에 요새화 되었다. 지금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그 흔적만 남았다.




잉글랜드 서남부 데본 지방의 플리머스Plymouth에 위치한 로열 시타델Royal Citadel.
상당히 모범적 17세기 요새의 모습이다.




잉글랜드 동남단 콘월 해안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실리 군도의 세인트 매리 섬에 위치한 '스타캐슬'Star Castle.
매우 작은 요새이지만 '별 모양'은 그래도 그럴듯하게 갖추고 있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잉글랜드 동남부 콘월 카운티의 펄머스에 위치한 펜데니스 캐슬Pendennis Castle.
헨리 8세 시대에 기초적인 포대가 건설되었고 그 주변으로 '현대화'된 요새가 구축되었다.




위의 포츠머스로부터 동쪽에 떨어진 요새 포트 컴벌랜드Fort Cumberland.
1747년 느즈막하게 컴벌랜드 공작의 지휘로 건설된 매우 정석적인 구조의 성형요새다.




탬즈강 하구의 메드웨이에 위치한 포트 애머스트Fort Amherst.
1715년에 말보로 공작 감독으로 설계되었고 1756년에 건설 되었다. 지금은 그 구조가 많이 사라졌다.




역시 탬즈강 하구에서 런던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 틸버리 포트Tilbury Fort.
헨리 8세 시대에 만들어진 요새를 '현대화'한 결과물이다.




잉글랜드 서포크 남단의 랜드가드 포트Landguard Fort.
이것 또한 헨리 8세 시대에 만들어진 포대를 현대화 개장한 성형요새였다.




스코틀랜드 북부 인버네스 인근의 포트 조지Fort George.
18세기 초 재코바이트 반란 진압 직후 새로 모병되는 하일랜드 병사들의 주둔과 치안유지를 위해 건설 되었다.
지금까지도 하일랜드 연대가 관리하고 있다. 관광객에게 열려있지만 아직도 육군 소속인 몇 건물은 접근금지.




이 외에도 보다 덜 유명한 작은 요새나 성곽은 몇개 더 있다. 물론, 도버해협 너머의 '대륙'에 산재한 보방의 작품들, '진짜' 성형요새들 -예를 들어, Citadel de Lille 라던지 Citadel de Saint-Martin 등- 에 비하면 부족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축조되었으며 또한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왜 그럴까?

물론 거시적으로 간단하게 답하자면 '섬나라여서' 해군이 나라를 방어해주고, 대륙국가처럼 '방어선'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라고 요약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에게 그럴 의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위 요새들은 여러가지 난항을 겪고도 이루어진 결과물들이었다. 보방과 그 동료들이 마음껏 기술을 연마하고 요새들을 대량 건설하고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1544년,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군수국Office of Ordnance을 신설한다. 화약무기의 사용이 점차 대단위로 확대되는 이 시대에 군수국이 맡은 임무는 바로 탄약과 포탄의 생산 정비와 그 운송. 특히 해군 전열함들에 장비할 포와 포탄의 관리가 그 주 임무였다. 이후에는 더 나아가 해외 원정군이 필요로 하는 군수품의 수송도 담당했으며 짐마차나 짐말들 까지도 군수국의 소관이었다. 각 군대에는 군수국에서 파견나온 군무관이 배치되어 부대 운용의 일익을 담당했다. -물론, 전쟁성과 군수국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부서 간 경쟁에 의한 충돌도 있었고. 일례로 반도 전쟁 당시 웰링턴의 군대는 보급품 수송의 문제로 군수국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엘리자베스 1세 치세 때 Board of Ordnance로 이름이 바뀐 군수국. 이 군수국이 영국 내전이 끝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후에 또 새로이 맡은 분야들이 있었다. 포병대, 공병대의 운용. -영국의 포병대와 공병대는 19세기 중반까지도 국방/전쟁 장관이 아닌 군수국 장관의 담당 하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바로 방어거점의 축성-유지보수였다.

때는 1660년대 후반. 찰스 2세 치세 영국의 요새들은 대부분 매우 암담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군사거점이랍시고 쓰이는 많은 '요새'와 '성채'들은 에드워드 1세 시절까지도 족히 거슬러 올라가는 그야말로 진짜 중세 성들이었다. 그나마 헨리 8세 치세인 1540년대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시도되었던 해안 방어 강화 계획 덕에 만들어진 '신식' 구축물들은 해안지대에 꽤 존재했지만 이들도 스튜어트 왕정 이래 유지 보수가 전혀 되지 못한채 방치되고 있었으며, 이미 해협 건너에서 시도되고 있던 많은 신식 요새 기술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게다가 찰스 1세와 의회 간의 영국 내전에 많은 요새들이 사용되었고, 또 파괴되었으며, 내전이 끝난 후 공화국 시대에는 대부분 다시 버려졌기에, 정말로 심각한 위협이 있을 경우 제대로 방어에 사용될만한 곳들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런 상태에서 찰스 2세는 군수국에게 그렇던 브리튼의 방어 체계를 개선하도록 명한다. 1665년 제 2차 영-란 전쟁의 와중이었다. 물론 이 조처는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1667년 데 로이터 제독이 지휘하는 네덜란드 함대는 잉글랜드 채텀 해군기지 안까지 밀고 들어와 영국에 치욕스러운 패배를 안겼고, 그 지경으로 적함대가 들어올 때까지 이를 막아낼 요새도 제대로 없었다는 사실은 영국에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영국이 대대적인 요새 건설에 착수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일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상태가 매우 암담했다. 원래 이런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이었지만 좀 심각했다. 군수국은 전국의 방어거점들에 조사관들을 파견했다. 인력이 부족했기에 조사관들을 전부 파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기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도 아니었지만, 일단 파견나간 조사관들은 죄다 군수국에 암울한 보고서들을 제출했다.

"'the fortification in this place is come to a total ruin. The moats about the town most grown up; the ramparts without parapets like a dike on a seaside. The stone wall about the town all decayed, cracked and ready to fall down which it has in one part but repaired by the town. It has not one inch of parapet nor a gun about the walls that can do service."
-이곳의 성곽들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해자는 (퇴적물이 쌓여) 낮아졌고, 흉벽조차 없는 성벽들은 고작 바닷가 제방에 불과합니다. 마을 주위의 석조 벽들은 모두 붕괴상태로, 마을에서 보수한 한군데만 빼곤 모두 금이가고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쓸만한 1인치의 흉벽조차, 1문의 총포조차 없습니다.-

1681년 헐Hull시의 성곽과 요새들을 조사한 스웨덴 출신 기술자 마르틴 벡크만이 군수국에 보낸 보고서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다른 수많은 거점들에 대한 보고들에서 계속 되풀이된다. 그나마 수도 런던 주변의 요새들만이 쓸만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긴 했으나 이들도 이미 구식이었다.

가장 먼저 시도된 것은 주요 조선소와 항구도시들의 보호를 위한 요새화 작업이었다. 많은 항구들이 아무런 성곽의 보호도 없이 그냥 휑하니 뚤려있었고, 이를 위해선 새로운 방벽들이 세워져야 했다. 오가는 해운교통에 의한 방해, 물 속에 신축하는 기술적 어려움, 해군에서의 방해 -요새 건축에 동원될 만한 숙련공들의 징집- 등이 많은 방해요소였다. 포츠머스와 플리머스의 성벽들은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간신히 만들어 졌다. 그렇다고 이미 있는 거를 보강하는게 쉬운 것도 아니었다. 앞서 기재한데로, 이미 존재하는 성들과 요새들은 오랜 방치로 인해 망쳐질 대로 망쳐져 있어 그걸 보수하는거나 아예 새로 짓는거나 별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

이런 것을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외국 기술자들이 초빙되고 공병 장교가 육성되고 하면서 이들이 보수/축성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면, 여기서 또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대도시나 항구의 요새 건축 계획의 경우, 설계와 수립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설계가 완성되고 계획이 세워져 현장에 가보면 이미 엉뚱한 건물들이 요새 건설 예정지에 들어서 있는 황당한 일도 너무나 자주 있었던 것이다. 군수국은 각 지자체장들에게 무허가 건축을 제지하고 방어물 건축 예정지에 다른 '잡물'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고 여러차례 요청했으나 그러한 요청들이 그냥 무시되는 경우도 많았다. 기술자들 중 한 사람은 급히 설계를 수정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외국이었다면 그 자리에 들어온 민간 가택들을 죄다 부숴 철거해버리고 그대로 요새를 지을텐데' 라는 기록을 남겼다. 영국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또한 돈 문제는 언제나 시련을 제공했다. 이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 1697년 설계하면서 시작된 포츠머스 항의 방벽 건설에만 총 30만 파운드가 소요되었다. 같은 해 군수국에 배정된 전체 예산은 27만 파운드였다! 다른 모든 보수 작업, 축성 작업에도 결코 적지 않은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이럴진데 의회는 Realm의 방어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예산 증액에 대한 요구를 무시했으며 재무성까지 군수국의 축성 계획과 그 예산안에 이것저것 제동을 걸고 나섰다.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그것도 낭비가 심했다. 군수국은 사정상 건설업자들에게 청부를 주어 축성 계획을 진행시켰는데, 당시 영국에는 그만큼 대규모 건설 작업을 진행할만한 사업자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런던 대화재 후 피해 구역 재건축을 맡았던 핏치Fitche 형제 등의 소수 '재벌'급 건설업자들만이 군수국과의 계약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독점을 했으니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계약조건들을 군수국에 강요하는 것도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핏치 형제는 이를 통해 커다란 (그리고 부당한) 수익을 올렸다.

게다가 군수국과 계약한 몇몇 건설업자들은 다시 더 작은 업자들에게 하청을 맡겼는데, 이 하청 덕에 계약 불이행의 위험이 존재했다. 계약이 꼬이고 임금 지불도 꼬이면서 건설이 진행되지 않아 차일피일 시간만 지난 채 미완성으로 오랜 기간 지낸 요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런 식의 공사 지연에 날씨의 방해까지 가세했다. 잉글랜드 남해안에 건설해야 된다는 것은 이런 점을 부담으로 갖고 있었다. 기상이 건조하면 건조한대로 강물이 줄어들어 내륙에서 보내오는 요새 건설자재들의 강을 통한 운송이 어려워졌다. 기상이 나쁘면 나쁜대로 도버해협의 유명한 거친 폭풍우가 마찬가지로 운송과 건설을 방해했을 뿐더러 지반도 쓸어내렸다. 건설자재 부족에 의한 공사지연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몇몇 군수국 감독관들은 하청업자들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일부러 자재를 늦게 배송하거나 하등급의 자재를 보낸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컸던 문제는 바로 기술자의 부족이었다.

앞서 적었다시피, 요새 건설과 보수를 담당한 군수국은 포병대와 공병대 업무도 담당했다. 영국은 이미 17세기 말부터 계속해서 대륙의 전쟁에 휘말리거나 참가하면서 대규모의 파병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유능한 군수국 기술 군무관들의 차출로 이어졌다. 포대 운용과 공성전에 기술자들이 동원되어야 했기에 정작 본토에 남아 요새를 설계하고 그 건설을 감독할 사람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기술자가 많지도 않았다. 그나마 영국에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은 동맹국인 네덜란드 인들이었다. 1706년에 추밀원에서, (재무장관)이 군수국에게 항구도시들의 방어 보강을 확대하라고 재촉했을 때 군수국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군수국 선임 기술자들 중 리차드 대령은 스페인에 공성전을 감독하러 가는 중이었고 로머 대령은 프랑스에 포로로 잡혀 있었으며 한웨이 대위는 벨기에 원정군에 가 있었기에 남은 사람 중 탈보트 에드워즈 대위가 유일한 선임 기술자였으나 군수국은 그가 요새 축성에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다, 따라서 방어 강화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 고 보고했다. 그나마 에드워즈 대위라도 있는게 다행이었다. 그가 지브롤터에 배치되어 있었던 1703년에는 선임 기술자가 브리튼 섬에 단 한 사람도 없어서 잉글랜드 북부에 신축될 거점들의 설계를 경험 없는 신임 소위 두 명이 담당해야 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영국은 이 난항을 헤쳐 나갔다. 네덜란드 출신의 버나드 드 곰므Sir Bernard de Gomme 경이 1661년 군수국의 Engineer-in-chief, 모든 축성과 방어거점을 담당한 때부터, 영국인들은 외국 기술자들과 갖은 충돌과 갈등을 빚어가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느리게나마, 영국의 기술사관들은 대륙의 선진 축성기술들을 습득해 나갔다. 기술 장교들, 공병 장교들은 더욱 늘어났고 수 뿐 아니라 지식도 늘어났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자들에게 돈을 뜯기건 하청업자들이 일을 대충 처리했건 지불할 임금이 없어 공사가 중단되었건 간에- 이로 인해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나름대로 훌륭하게 선진화된 요새들이 영국의 해안선과 항구들을 보호하고 있었고 그 식민지들 -북미 등지- 에도 성형요새들이 가득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요새들은 아직까지도 남아, 비록 보방과 프랑스인들의 명성에 가려지긴 했어도, 훌륭히 노력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주요 참조: Tomlinson, Howard. 1973. "The Ordnance Office and the King's Forts, 1660-1714". Architectural History. 16: 5-25.
O'Neil, B. H. St. J. 1960. Castles and cannon; a study of early artillery fortifications in England. Oxford: Clarendon Press.
Williams, Geoffrey. 1999. Stronghold Britain: four thousand years of British fortifications. Stroud: Sutton.

ps. 구글맵이 역시나 아주 유용하구나!

덧글

  • 토나이투 2012/08/03 17:13 #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국 전체가 요새화된 섬으로 볼수도 있겠군요

    무슨 4대 군사노선도 아니고...무서운 영국사람들...
  • m1a1carbine 2012/08/03 17:23 #

    ○나 카와이하게 축성해볼께요~ 별모양으로 건축해봐야지☆(?!)
  • 부여 2012/08/03 17:33 #

    이거야말로 한번 더 찬찬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군요. 그나저나 중간의 해자가 낮아졌다는 말은 해자가 얕아졌다고 해야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 부여 2012/08/03 17:49 #

    아닌 고생을 하면서도 저걸 만들어낸 영국... 민주화(?) 때문에 무허가 가옥 철거에 애로사항이 꽃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군요.
  • 함부르거 2012/08/03 17:50 #

    중간에 하도급 관련 이야기는 우리 나라 공무원들이 겪었던(일부는 지금도 벌어지는) 일들과 유사하군요. ^^;; 하도급 대금 안주는 원청업자들이나, 능력이 부족한 하도급 업체에 맡겨서 먹튀하는 업체라든가 별별 일이 다 있죠. 건설비리는 어디나 비슷비슷한 거 같습니다.
  • 잠본이 2012/08/03 17:50 #

    성형요새라길래 아니 요즘 성형외과들은 요새급으로 구축되어 있는가? 라는 말도안되는 생각을(...)
  • 울트라김군 2012/08/03 17:57 #

    진지하게 읽다가 별모양에서 뿜었습니다[...]
    저런 카와이한 요새가[...]
  • 리리안 2012/08/03 18:08 #

    전 지금까지 보방식 요새가 '보병방어식 요새' 비슷한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람 이름이었군요...(아잉 부끄러워라//ㅁ//)
  • 해색주 2012/08/03 18:21 #

    저는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말보로 공작이 프랑스 본토을 치지 못한게 막대한 요새의 연계로 인해서라는 것을 여기 와서 처음 알았죠. 프랑스인들은 베트남에도 보방요새를 지었다죠.
  • Mr 스노우 2012/08/03 18:38 #

    사실 저도 영국과 보방식 요새가 머릿속에서 잘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 Allenait 2012/08/03 18:38 #

    사진으로 보니까 별 모양이 꽤 귀엽네요(...)

    그리고 하도급 비리는 아주 시간을 달리는군요
  • 모에시아 총독 2012/08/03 19:33 #

    역시 언제 어디서나 그 놈의 건설하청이 문제로군요.......그나저나 성형요새는 그냥 별모양 요새라고 써도 될듯합니다. 이 편이 딱 봤을때 이해하기도 쉬울거 같구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금린어 2012/08/03 20:52 #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셔먼 2012/08/03 22:31 #

    '이런 일이 일어날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하청업체가 내 말을 듣지 않았어'로군요.;;
  • 행인1 2012/08/03 22:40 #

    "섬나라 영국에 왜 저런 보방식 요새가...?"하면서 포스팅을 읽어보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네덜란드 함대가 템즈강을 거슬러와 쑥대밭을 만드는 일을 겪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할 수 없었을듯 합니다.(기술전수를 네덜란드에서 받았다는건 개그라면 개그)
  • 덩굴숲의사람 2012/08/03 22:41 #

    우와...

    정말 좋은 역사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역시 매트리들리의 말대로

    서로간에 잘하는 것을 교환하는 것은

    서로에게 엄청난 이득을 주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대 감동을 받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 효우도 2012/08/03 23:09 #

    언젠가 한번 구경하러 가보고 싶네요.
  • 누군가의친구 2012/08/04 01:36 #

    저거시 X나 카와이하게 ☆모양으로 축성된 요새군요.ㄲ
  • 零丁洋 2012/08/04 02:21 #

    영국다운 요새 건설 과정이네요. 무조건 밀어 붙이치는 것을 능사로 유능으로 아는 우리에게 너무 낯설고 신기하기 까지 하네요. 물론 섬나라여서 군사적으로 급박한 경우가 적어서 그렇다하지만 이런 느림과 타협이 오히려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 같습니다. 고려공사삼일-조선공사삼일-대한공사삼일 함부로 결정하고 함부로 실행하고 함부로 끝내죠.
  • Tbear 2012/08/04 11:20 # 삭제

    글만 놓고 보면 저 동네도 주먹구구 행정에 하도급 비리까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이 버라이어티하게 나오는데, 느림과 타협이니 고려공사삼일 같은 이야기를 하실필요가 있나요
  • 지나가던과객 2012/08/04 03:48 # 삭제

    국가라는 갑을 등처먹는 슈퍼 을이란......
  • 터미베어 2012/08/04 04:03 #

    영국은 사실 저런식의 요새는 주요 항구지역에나 설치하고...주포 해안포대만 깔아도 방어가 충분할꺼 같기도 하고..(사실 영국이 본토 치공을 받을정도로 해군이 약했던적이 있던가요..)

    그런데 중간의 조그마한 스타포트 진짜 귀엽네요.(....)
  • 천하귀남 2012/08/04 12:49 #

    역시나 역사에서도 돈은 웬수입니다. ^^;
    그래도 그걸 꾸준히 추진하고 이루어낸 영국인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 Ha-1 2012/08/04 13:19 #

    trace italliene 가 떠오르는 수성용 축성법이군요. 건물에 포에 맞추는 토목 트렌드 (...)
  • 바람불어 2012/08/08 07:18 #

    그냥 별모양요새라고 번역해도 되겠군요. 모양이 딱 그거네요.
  • Ha-1 2012/08/12 00:10 #

    지금은 좋은 관광자원 공급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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