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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 통치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최근 수년간 놀라울 정도로 증폭되어왔다. 그것은 일제의 강압과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대별되어 정리되어온 식민지 시기의 사회적 실상에 대해 기존의 인식 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실재의 존재가 학계 안팎에서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견은 작게는 단순히 일제시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史實)의 발견에서부터, 크게는 19~20세기 한국사 담론을 지배해온 민족사적 내러티브 전체에 대한 심대한 문제제기 내지는 20세기 내셔널리즘적 역사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발본적인 인식론적 전환의 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일제의 강압에 짓눌린 식민지 경험, 절체절명의 국가 부재의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경험했던 ‘국망’의 수모에 대한 비참한 집합 기억은 부인할 여지없는 뼈아픈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민족사적 트라우마가 20세기 후반 분단 체제와 냉전 시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면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무자비한 무단통치와 교활할 문화정치, 황민화(皇民化)와 민족말살정책으로 이어지는 일제 식민통치, 그리고 그에 맞선 국내외 항일 독립운동의 굵직한 영웅적 실천들만이 수난기 민족사적 사실로서 정식화되는 과정에서, 당시 암흑 같던 식민지 사회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설익은 근대 문명을 체화하고 있던 사회적 주체들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충분한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우리에게 식민지 시기는 유관순과 윤봉길의 투쟁사이자, 이광수와 염상섭의 번민의 시기였고, 최승희와 나혜석의 파란만장한 삶의 경연장으로는 서술되었지만,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삶은 무채색 배경 화면으로 처리되었을 뿐이다.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대중들의 일상생활, ‘국민주권’이나 ‘시민권’은 부재했지만 실질적으로 ‘근대’를 학습하고 ‘민족을 형성했던 식민지 주체들의 삶의 공간, 그 광범위한 ’회색 지대‘의 실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일본 열도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더불어 느닷없는 ‘선물’처럼 닥쳐온 광복과 미군정, 곧 이은 분단과 민족상잔의 참혹한 경험은 우리에게 근현대사의 탄탄한 토대가 구축될 ‘반일’과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철옹성을 제공했다. 분단된 정부에 의해 공인된 국사 담론의 기본 틀을 벗어나는 ‘불온한 기억’의 발굴과 다른 역사‘에 대한 연구는 철저히 금기시ㄱ되었다. 적어도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전 국민의 암묵적인 동의가 유효한 기간 동안 우리에게 ‘민족사’ 외부의 다른 역사를 상상할 여백은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상기해볼 때 20세기 후반 우리사회를 지배한 식민지 시기 역사 인식의 단선화와 협애화는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식민지 시기에도 ‘민족’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삶이 실존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민족’의 경계를 넘나드는 계급, 계층, 젠더, 신분, 세대, 지역 간의 마찰과 갈등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쁜’ 조선인이 있었듯이 ‘좋은’ 일본인도 있었으며, 이들 일본인과 조선총독부가 단순히 ‘폭력’과 ‘억압’과 ‘수탈’만이 아니라 ‘설득’과 ‘교화’와 ‘개발’도 시행했다는 사실을 재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전면적으로는, 민족의 자기 결정권을 통째로 이민족에게 빼앗긴 식민지 체제 한국 사회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일제 식민통치였음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진데,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적 지배전략과 사회,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분석 없이 과연 우리가 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와 오늘날의 연속과 단절을 논할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 서면 잘 알려진 식민지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 구도 또한 식민지 사회의 실상을 해명하는데 있어서는 극히 외면적인 분석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망국’의 시대, 부재하는 국가의 자리를 차지한 외래 식민권력이 식민지 사회에 대해 표방한 전략 혹은 그 전략의 정치/경제적 효과에 주목할 뿐, 그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국사(國史)’는 여전히 ‘국가의 역사’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반면 현실의 변화는 너무나 급격하고 전면적이다. 냉전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걷잡을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도래한 지구화 움직임과 함께 세계사는 우리의 통념적 역사 인식에도 거대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식민지 시기의 재발견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이 시기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격동기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러일전쟁을 계기로 현실화되어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더불어 종언을 고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는 제1, 2차 세계대전의 전전과 전후에 걸친 역사적 격동기에 해당한다. 오늘날 지구화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시점에서 식민지시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더 이상 한일 간의 해묵은 민족 감정의 문제로 치환되거나 ‘수탈이냐 근대화냐’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되어서는 협애한 국수주의적 역사 인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시기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이 전통적인 회이론적 질서의 장기 지속으로부터 벗어나 근대 국제 질서로 편입되는 과도기로 재규정되고, 세계사적 근대가 동아시아에 자리 잡는 과정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과는 달리 일본은 당시 유일한 유색인종 제국주의이자, 지리적 문화적으로 식민지와 인접한 근린(近隣) 제국주의로서 강력한 동화주의적 영토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급격한 제국 팽창과 식민지배의 과정에서 발생한 내외의 저항을 억누르고, 팽창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강력한 군국주의적 통합전략을 선택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특히 일본 제국에 병합된 유일한 단일 왕조국가로서 식민지 조선이 차지한 정치적 위상과, 대륙 팽창의 교두보로서 한반도가 차지한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식민지 체제와 탈식민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타이완이나 만주국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문제, 더 나아가 제국과 식민지, 식민지와 식민지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일본 제국 해체 이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와 남북한 분단 체제의 성립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관건이 되는 문제다.
셋째로, 당시 사람들의 삶과 꿈, 의미와 상징에 대한 질문이 다시금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다. 식민지 체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상상하며 어떤 삶을 영위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안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 지배와 저항의 전략과 전술이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식민권력의 힘이 압도하는 식민지 사회가 피식민자들의 저항이 가시적으로 사건화되는 ‘소란스러운 전장’이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파농F.Fanon과 푸코M.Foucault가 지적했듯이, 식민지 사회에서의 일상적 평화는 내면적 복종의 징후라기보다는 이중 주체 혹은 다중 주체화된 피식민 대중이, 식민권력이 고안해낸 무대장치와 배역을 역이용하는 ‘소리 없는 저항’의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다.
식민지 시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관심과 시각에 따라 무수히 다른 질문과 해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특권적 역사 해석자로서의 ‘내셔널 히스토리’의 한계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식민지 시기는 단순히 학계의 ‘뜨거운 감자’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 인식을 담금질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식민지 시기의 이러한 인식론적 운명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근대’에 대한 성찰과 쌍생아라는 점에서 필연적인 것이다. 지난 세기 우리가 경험한 식민지 시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사회를 전 지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거시적인 망원경적 통찰력과, 그 사회의 내적 역동성과 문화적 복합성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미시적인 현미경적 시선을 결합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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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와 공간 - 식민지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
김백영 지음.
pg.19~24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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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 통치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최근 수년간 놀라울 정도로 증폭되어왔다. 그것은 일제의 강압과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대별되어 정리되어온 식민지 시기의 사회적 실상에 대해 기존의 인식 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실재의 존재가 학계 안팎에서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견은 작게는 단순히 일제시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史實)의 발견에서부터, 크게는 19~20세기 한국사 담론을 지배해온 민족사적 내러티브 전체에 대한 심대한 문제제기 내지는 20세기 내셔널리즘적 역사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발본적인 인식론적 전환의 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일제의 강압에 짓눌린 식민지 경험, 절체절명의 국가 부재의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경험했던 ‘국망’의 수모에 대한 비참한 집합 기억은 부인할 여지없는 뼈아픈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민족사적 트라우마가 20세기 후반 분단 체제와 냉전 시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면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무자비한 무단통치와 교활할 문화정치, 황민화(皇民化)와 민족말살정책으로 이어지는 일제 식민통치, 그리고 그에 맞선 국내외 항일 독립운동의 굵직한 영웅적 실천들만이 수난기 민족사적 사실로서 정식화되는 과정에서, 당시 암흑 같던 식민지 사회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설익은 근대 문명을 체화하고 있던 사회적 주체들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충분한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우리에게 식민지 시기는 유관순과 윤봉길의 투쟁사이자, 이광수와 염상섭의 번민의 시기였고, 최승희와 나혜석의 파란만장한 삶의 경연장으로는 서술되었지만,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삶은 무채색 배경 화면으로 처리되었을 뿐이다.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대중들의 일상생활, ‘국민주권’이나 ‘시민권’은 부재했지만 실질적으로 ‘근대’를 학습하고 ‘민족을 형성했던 식민지 주체들의 삶의 공간, 그 광범위한 ’회색 지대‘의 실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일본 열도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더불어 느닷없는 ‘선물’처럼 닥쳐온 광복과 미군정, 곧 이은 분단과 민족상잔의 참혹한 경험은 우리에게 근현대사의 탄탄한 토대가 구축될 ‘반일’과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철옹성을 제공했다. 분단된 정부에 의해 공인된 국사 담론의 기본 틀을 벗어나는 ‘불온한 기억’의 발굴과 다른 역사‘에 대한 연구는 철저히 금기시ㄱ되었다. 적어도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전 국민의 암묵적인 동의가 유효한 기간 동안 우리에게 ‘민족사’ 외부의 다른 역사를 상상할 여백은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상기해볼 때 20세기 후반 우리사회를 지배한 식민지 시기 역사 인식의 단선화와 협애화는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식민지 시기에도 ‘민족’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삶이 실존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민족’의 경계를 넘나드는 계급, 계층, 젠더, 신분, 세대, 지역 간의 마찰과 갈등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쁜’ 조선인이 있었듯이 ‘좋은’ 일본인도 있었으며, 이들 일본인과 조선총독부가 단순히 ‘폭력’과 ‘억압’과 ‘수탈’만이 아니라 ‘설득’과 ‘교화’와 ‘개발’도 시행했다는 사실을 재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전면적으로는, 민족의 자기 결정권을 통째로 이민족에게 빼앗긴 식민지 체제 한국 사회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일제 식민통치였음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진데,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적 지배전략과 사회,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분석 없이 과연 우리가 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와 오늘날의 연속과 단절을 논할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 서면 잘 알려진 식민지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 구도 또한 식민지 사회의 실상을 해명하는데 있어서는 극히 외면적인 분석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망국’의 시대, 부재하는 국가의 자리를 차지한 외래 식민권력이 식민지 사회에 대해 표방한 전략 혹은 그 전략의 정치/경제적 효과에 주목할 뿐, 그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국사(國史)’는 여전히 ‘국가의 역사’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반면 현실의 변화는 너무나 급격하고 전면적이다. 냉전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걷잡을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도래한 지구화 움직임과 함께 세계사는 우리의 통념적 역사 인식에도 거대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식민지 시기의 재발견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이 시기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격동기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러일전쟁을 계기로 현실화되어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더불어 종언을 고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는 제1, 2차 세계대전의 전전과 전후에 걸친 역사적 격동기에 해당한다. 오늘날 지구화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시점에서 식민지시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더 이상 한일 간의 해묵은 민족 감정의 문제로 치환되거나 ‘수탈이냐 근대화냐’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되어서는 협애한 국수주의적 역사 인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시기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이 전통적인 회이론적 질서의 장기 지속으로부터 벗어나 근대 국제 질서로 편입되는 과도기로 재규정되고, 세계사적 근대가 동아시아에 자리 잡는 과정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과는 달리 일본은 당시 유일한 유색인종 제국주의이자, 지리적 문화적으로 식민지와 인접한 근린(近隣) 제국주의로서 강력한 동화주의적 영토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급격한 제국 팽창과 식민지배의 과정에서 발생한 내외의 저항을 억누르고, 팽창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강력한 군국주의적 통합전략을 선택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특히 일본 제국에 병합된 유일한 단일 왕조국가로서 식민지 조선이 차지한 정치적 위상과, 대륙 팽창의 교두보로서 한반도가 차지한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식민지 체제와 탈식민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타이완이나 만주국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문제, 더 나아가 제국과 식민지, 식민지와 식민지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일본 제국 해체 이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와 남북한 분단 체제의 성립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관건이 되는 문제다.
셋째로, 당시 사람들의 삶과 꿈, 의미와 상징에 대한 질문이 다시금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다. 식민지 체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상상하며 어떤 삶을 영위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안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 지배와 저항의 전략과 전술이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식민권력의 힘이 압도하는 식민지 사회가 피식민자들의 저항이 가시적으로 사건화되는 ‘소란스러운 전장’이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파농F.Fanon과 푸코M.Foucault가 지적했듯이, 식민지 사회에서의 일상적 평화는 내면적 복종의 징후라기보다는 이중 주체 혹은 다중 주체화된 피식민 대중이, 식민권력이 고안해낸 무대장치와 배역을 역이용하는 ‘소리 없는 저항’의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다.
식민지 시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관심과 시각에 따라 무수히 다른 질문과 해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특권적 역사 해석자로서의 ‘내셔널 히스토리’의 한계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식민지 시기는 단순히 학계의 ‘뜨거운 감자’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 인식을 담금질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식민지 시기의 이러한 인식론적 운명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근대’에 대한 성찰과 쌍생아라는 점에서 필연적인 것이다. 지난 세기 우리가 경험한 식민지 시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사회를 전 지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거시적인 망원경적 통찰력과, 그 사회의 내적 역동성과 문화적 복합성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미시적인 현미경적 시선을 결합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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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와 공간 - 식민지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
김백영 지음.
pg.19~24 발췌






































덧글
"사건이 일어난 당대의 견해보단, 여러가지 사료등을 토대로 판단할 수 있는 후대의 추리가 더 나을 수 있다."
"오오~ 역시 전공자는 다르다능. 88년생이라는데 이렇게 격조높고 사려깊은 에세이를 쓰다닝~ 역시 월광토끼님이라능... ㅠㅠ"
이런 느낌이었는데 발췌... 였군요. 하하하... ^^;; 글 내영 자체는 완전 좋네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처참한 명성(?)을 보면 알겠지만 실체적 접근을 하면 뭇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죠. 듣기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상당히 거슬리거나 도저히 용납못할 이야기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다보니..
밝은 시대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것은 어려운 작업이지만
어두운 시대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은 당대 혹은 가까운 미래에는 매우매우 어려운일이 아닐까 합니다.
2.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구보씨'같은 이들이 까페를 쏘다니며 서양 문물에 대한 담소를 즐긴 것도 사실이고 경성 등지에 토막민이 아주 많이 올라와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린 것도 사실이고, 1941년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징병, 징용 등으로 전전긍긍 한것도 사실이죠.
3. 그런데 막상 우리가 '발전'이라고 할만한 일은 미국인들이 와서 20년 넘게 이래라 저래라(국립대학교 만들어라 부터 시작) 한 다음부터 일어난 것 같더군요.
그동안 품고 있던 화두가 그대로 정리된 글을 만나게 되서 첫줄부터 두근거리면서 읽었습니다.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책일것 같아 주문했습니다. 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