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모토 아키라의 <감옥학원>을 추천하면서...


만화가 히라모토 아키라平本アキラ 선생은 주간 영 매거진에 1995년에 데뷔하여 1998년부터는 [턱 없는 겐과 내 이야기アゴなしゲンとオレ物語]라는 작품을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30여권에 달하는 분량으로 그려낸 사람이다.

"턱 없는 겐과 내 이야기"는 살이 쪄서 턱이 없어진 중년 운송업자 아저씨 겐 씨와 그 부하 직원 켄지, 그 외 그 옆의 히로인들이 엮어내는, 머리 비우고 보면 되는 옴니버스식 개그물이었다. 한국에는 '무뇌충 겐씨 스토리" 라는 제목으로 몇 권 번역 되어 나오다가 중단된 바 있다.





...뭐 대충 이런 만화다.


나도 좀 들여다 보기는 했으나, 취향 탓인지 개그 만화인데도 난 그 개그들을 별로 재미있게 느끼지 못했다. 이 만화가 그래도 어떻게 10년이나 연재되었는지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만화가의 방향성은 단순히 이 작품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히라모토 선생이 2004년에는 월간 애프터눈 지에 연재하여 내놓은, 선이 굵직한 아래 작품을 보자.


[-Me and the Devil Blues-]



블루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젼드급인 로버트 존슨의 동명의 곡을 제목으로, 짐-크로우 시대의 찢어지게 가난하고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시시피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었던, 아직 무명인 로버트 존슨의 여정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그리고 있다. 심리적, 감정적, 그리고 시각적으로 굉장히 진중한 톤으로 연출되는 그 이야기와 너무나도 뛰어나고 탄탄한 극화체의 그림체가 상당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4권 완결인 이 작품은 두 권으로 묶여서 미국에서도 영역 정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일본 작가가 그린 1920년대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은 미국인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내가 히라모토 아키라라는 작가를 접한 것도 바로 이 Me and the Devil Blues 미국 정발판을 통해서였다. 반즈앤노블 서점에 꽃혀있던 그 포스있는 표지와 시놉시스가 인상적이었기에 덜컥 충동 구매한 덕택이였다. 음악 이야기라기 보다는 짐 크로우 시대 흑백 갈등이 더 포커스가 되는 것 같아서 약간 실망하긴 햇었지만. 여하간 '블루스'를 보면 히라모토 선생이 '겐씨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믿기 힘들 정도다. 그에게는 같이 일하는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가 이 포스팅을 하는 것은 위의 두 작품 때문이 아니라, 위 두 작품과는 180도로 다른 작품 때문이다.


2011년부터 주간 영 매거진에 연재되고 있는 이 문제의 작품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위 작품들을 그린 작가가 그린 거라고는, 같은 사람의 물건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 만화.



일단 이 작품은 말해두건데, 첫 인상이 상당히 역겹게 다가온 작품이다. 어이없게 부조리한 설정에, 납득할 수 없는 억압적인 내용에다 그 억압적 구조 전체가 하나의 큰 마조히스틱한 페티시즘의 구도를 위해 연출되는 모습에 역겨움을 느꼈다. 과도한 페티시스트 섹슈얼리티의 강조가 지나친 나머지 부담스러울 정도다. 과장 같은가?

아니, 아예 노골적 성애를 묘사하는 성인만화였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성인만화였다면 그게 성 페널티 학원이던 성 미카엘 학원이던 방과후 노예클럽이건 뭐시기건 간에 상관 없었겠지만, 성인만화가 아니니까 그런 특색이 부각된다. 그래서 그게 부담으로 느껴진다. 성인만화와 전연령만화는 읽을 때 멘털리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내가 이 만화에 등장하는 것 같은 부조리의 구조 배경 자체를 별로 안좋아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데드맨 원더랜드][배틀 로얄]같은 물건의 세계관 설정 같은 것. 게다가 난 마조히즘적 취향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실컷 욕해두고 나서 고백하자면, 난 이 작품에 홀랑 빠져있다.


[감옥학원監獄学園(プリズンスクール)]이다.




엄격한 엘리트 여학교인 하치미츠 학원. 이곳은 성비불균형 문제 때문에 일단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고 시범적으로 남학생 다섯 명을 입학 시킨다. 여학생 천여명에 비해 남학생은 다섯 명 뿐. 이 다섯은 여자들과 지내게 되어 기뻐하나 아무도 남자들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이 학교를 조종하는 어둠의 학생위원회가 그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중년의 변태호색한인 이사장을 아버지로 둔 학생회장이 남자혐오증이라 그렇게 된 것. 이 위원회는 여학생 목욕탕을 엿보려다가 걸린 남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더 나아가 퇴학시켜버리려고 음모를 짠다. 남자들은 지옥같은 감옥생활을 견뎌내고 퇴학당하는 것을 막기위해 분투한다! (그리고 일부는 섹시한 부회장하테 얻어터지는걸 즐긴다) 그 와중에 주인공 후지노 키요시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과 맺어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이런 내용의 에로+개그+부조리 물이다. 이런 스토리를 다 따라가며 보는 사람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저 무지막지한 노출을 하고 죄수들을 가혹하게 매질하는 부회장과 그 부회장이 연출하는 에로씬을 보기 위해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작품을 보기 시작한 건 순전히 그림체가 예뻐서였는데, 초반 전개에 느낀 Revolting한 충격이 희미해지고 나자 이제는 진심으로 이 만화를 추켜세우고 싶다. 일단 그림체가 甲 中 甲인게 사실이다. 그림체의 변화가 일단 가히 충격적이지 않은가? 맨 위의 '턱 없는 겐씨'나 로버트 존슨의 그림체와 비교해 보라. 너무나 달라져서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또 너무나 예쁜 조형이어서 더 와닪는다. 내 취향에 가히 완벽하게 맞는 그림체인데다 그 퀄리티는 발군이다.

또한, 연출이 -비록 과도하게 성적일지라도- 쫄깃하기 짝이 없으며 캐릭터들이 기괴하게도, 참 마음 설레이게 만든다. 여캐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남자죄수 5인조 중에서 '삼국지 매니아'인 가쿠토는 처음에는 그저 사극풍으로 말하는 괴짜 삼국지 오타쿠로 보이긴 해도 그 성실함에 절로 정감이 간다.

전반적인 스토리나 설정은 무거운데 내용 자체를 보면 그 무거움을 그냥 개그물로 승화시키고 있다. 개그도 일부러 웃기려고 농을 던지는 개그씬인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상황 자체의 부조리함과 황당함에서 웃음이 빵 터지게 만든다.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로 '자네들은 엉덩이가 좋은가, 가슴이 좋은가? 엉덩이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네.'를 말하는 이사장의 언동 같은 장면들 말이다.

감옥학원은 청년만화지만 자주 등장하는 과도한 성적묘사 때문에 일본 외 타국에 정발될 일은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만화는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굉장한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자 캐릭터 세 명에 대해 좀 이야기하겠다.





사실 부회장이 나오는 컷들은 대부분 다 올리면 잘릴 것 같을만큼 대놓고 姓적이기 때문에 Suspension of Disbelief에 무리한 부담을 줄 지경이긴 하다. 에로스는 좋지만 너무 과도하게 만성적이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과 러브라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심리묘사가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힘쓰는 중간보스에 불과한 느낌. 그래서 작품 내 소위 '에로 서비스 신'은 다 담당하는 이 캐릭터보다는 되려 다른 인물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위의 컬러 페이지에서 갈색머리]


히로인인 치요짱. 정석적인 '히로인'답게 순수하고 정상적인 인물이며 곤궁에 처한 주인공 키요시를 도와주려 애쓰며 키요시도 그녀와의 데이트를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해 단 하루의 탈옥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만큼 캐릭터성에 재미는 없다. 주인공과의 관계도 플라토닉해서 썸씽도 없다.



[위의 컬러 페이지에서 금발머리]


그런 와중에 폭발적으로 빅재미를 선사하고 있는건 학생회 임원이자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이고 싸이코스러우나 아이같은 순진함이 있는 '하나' 선배. 최근 연재분에서의 하나 선배와 키요시 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가히 폭풍같은 지경이라 향후 전개가 대단히 궁금해지는 바이다.

하나 선배라는 사람과 키요시 사이 벌어지는 일이 뭐냐면


3화 연속으로 내내 키스만 하고 있어! 쿨럭쿨럭





"으으 이놈 넌 나를 욕보이고 내 여러가지 종류의 첫 경험들을 스틸했어. 복수다! 네 첫키스만큼은 빼앗아주겠어!"




"너 좋아하는 여잔 있냐? 있다고? 보나마나 치요짱이지? 내가 치요짱한테 네가 한 짓 죄다 말해버릴거야!"

웁웁웁



...그 와중에 냉정히 생각하는 키요시.

"이건 진짜 키스가 아냐! 그냥 입술 박치기일 뿐이라구! 하나 선배는 어린아이에 불과하구나!
에잇 그렇다면 내가 진짜 키스를 보여줘서 멘붕시켜주지!

치요짱 미안해 난 퇴학당하는 걸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럴 수밖에 없어!"




하나 선배 멘붕하고 아헤가오 녹아웃


이렇게 키요시가 하나를 붙잡아두는 사이 다른 쪽에선 몰래 컴퓨터에 접근해서 기밀자료를 빼오는 그런 작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뭐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으헤헤 하나 선배 좋구나 헤헤헤




음 흠.


아무튼. [감옥학원]. 이 만화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ps.



[나나와 카오루]도 원서로 왕창 질렀는데 [감옥학원]이라고 못할쏘냐

다만 배송비가 무지막지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게 눙물날 뿐이지

핑백

  • '3월의 토끼집' : 감옥학원 최근 전개 (70~93) 2013-05-10 10:49:01 #

    ... ....히라모토 아키라 선생의 [감옥학원]은 계속되고 있고, 많은 전개가 있었다. 이 만화의 내용 대부분은 '프리즌 브레이크' 식으로 남자 죄수 5인이 감옥 생활을 견뎌내고 탈옥하려 ... more

덧글

  • 회색인간 2012/12/05 20:24 #

    잠깐 저 진중한 브루스 스토리와 저 막장 섹드립 개그가 같은 작가라고? 제길 감옥학원을 지를 수밖에 없잖아! 너도 나도!
  • 월광토끼 2012/12/06 18:40 #

    마미 선배!?
  • 네리아리 2012/12/05 20:35 #

    ....@0@....
    ㄴ할말을 잃었다
  • 월광토끼 2012/12/06 18:40 #

    어떤 점에서 할 말을 잃으셨나요 헤헤
  • 네리아리 2012/12/06 18:48 #

    그림체가 뭐 휙휙 바뀌어지는 것보면서 말이지요. 이건 뭐 변신 수준입니다.
  • 셔먼 2012/12/05 20:56 #

    으흐흐흐 남자라면 질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ㅂ=
  • 월광토끼 2012/12/06 18:41 #

    지름신의 조금 께림칙한 영접
  • 크랰킹 2012/12/05 21:00 #

    어 감옥학원 그림이 약간 그 바쿠만 작가 스럽네요
  • 월광토끼 2012/12/06 18:42 #

    그러고보니 오바타 타케시 선생과 비슷한 느낌도 있네요
  • 카구츠치 2012/12/05 21:12 #

    최근 화들은 박진감 넘치는 병맛이 무엇인지를 유감 없이 보여줬지요(....)
    자네는 왜 엉덩이를 가슴보다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과 대답이 아주 기억에 남았습니다 ㅎ
  • 월광토끼 2012/12/06 18:43 #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에 진화론적인 의미에서의 엉덩이 선호 이유를 들먹이는 (그것도 레알로 현실에 존재하는 이론)도 걸작이더군요. 사족보행과 직립보행으로의 진화라던가...

    따지고보면 주인공 일행이 죽도록 고생하는 것도 그 이사장이 원흉인데!
  • 대공 2012/12/05 21:45 #

    딴 곳에서 첨 소개받고 약빤 스러움에 멍...
  • 월광토끼 2012/12/06 18:44 #

    약내가 풀풀 나죠 허허허
  • 모에시아 총독 2012/12/05 22:01 #

    저 이거 몇편을 영역본으로 접했는데 충격과 공포를 금할 수 없더군요. 저같은 뉴비에겐 아직 감당하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 월광토끼 2012/12/06 18:44 #

    조금 더 보시면 재미를 느끼실 지도 모릅니다!
  • 유리멘탈 2012/12/05 22:24 #

    이런 것도 다재다능....인걸까요 -ㄷ-;;;
  • 월광토끼 2012/12/06 18:44 #

    그야... 그렇겠죠? -ㅁ-
  • 마법시대 2012/12/05 22:50 #

    참 작가가 변화무쌍하네;;;
  • 월광토끼 2012/12/06 18:45 #

    그러게 말입니다. 그만큼 어떤 스타일도 다 소화할 수 있단 얘기겠죠
  • MessageOnly 2012/12/05 22:58 #

    도진의홍씨의 병법이군요.
  • 월광토끼 2012/12/06 18:45 #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퇴로를 뚫던 그...
  • 지나가던 2012/12/05 23:49 # 삭제

    감옥학원 교보 통해서 주문하면 과연 올까요? (笑)
  • 월광토끼 2012/12/06 18:45 #

    가능하지 않을까요?
  • 가이우스 2012/12/06 06:16 #

    그라24에서 주문 받던데요
  • 월광토끼 2012/12/06 18:46 #

    그라24가 뭔가요..?;;;
  • 정의수호기사 2012/12/06 15:13 #

    이걸 아시다니
    풍류를 아시네요
  • 월광토끼 2012/12/06 18:48 #

    허허허허

    뭐 일단 이것저것 보다보면 그만큼 알게 되는 것도 생기는 겁지요
  • 아즈마 2012/12/06 19:03 #

    일전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상당히 후덜한 신을 본 기억이 있어서 선뜻 손이 안 갔었는데 일너 내용이었었군요..
  • 상처자국 2012/12/06 22:41 #

    이자식
    내가 요전에 말해줄 땐 들은 척도 안하더니
  • 자이드 2012/12/06 23:24 #

    ......저질러버렸구나!
  • 익명 2013/01/06 20:53 # 삭제

    하나선배 지젼
  • 미르 2013/01/07 22:04 # 삭제

    감옥학원 83화가 끝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정말인가요?

    한 60편 이후로 부터는 일어만 나와서 해석불가 ㅠㅠ 영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

    만 일어잘하셔서 좋겠어요 ^^
  • 혜성같은 북극곰 2013/03/05 23:54 #

    감옥학원 검색했다가 들어오게되었는데 글을 참 잘 쓰시네요^ ^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 ^
  • 혜성같은 북극곰 2013/03/06 08:24 #

    문의드립니다. 내가 90년말에 해적판으로 본 코믹에로물인데 제목을 몰라서요. 에로틱한 글래머 여교사가 노출증이 있어서 학교 제자들 앞에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는 에로물 만화였는데 아시는지요?
    아니면 만화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 혹시 에로틱한 여교사나 연상의 여성이 연하의 소년, 제자들을 유혹하는 만화 아시는 거 없는지요?
  • 월광토끼 2013/03/06 12:12 #

    흠.... 그게 잘;;;; 설명만으로는 뭔가 흔할 것 같으면서도 딱히 떠오르는건 없네요. 죄송합니다. 90년대 말, 여선생-남제자 관계, 에로물 이런 키워드로 찾아봐도 http://www.mangaupdates.com/image/i90332.jpg 이 정도밖엔 모르겠네요.

    제가 그 시절의 학원물/에로 정도래봐야 '교과서엔 없어' 밖에 본 게 없어서...
  • 샤만칸 2013/04/16 18:48 # 삭제

    이오나(IONA)말씀하시는 듯. 총4권짜리죠.
  • 천마도 2013/04/19 19:55 # 삭제

    솔직히 이거 끝까지보진않았지만 내용이 병맛^^; 인것은 확실합니다. 무슨 학교에 감옥이며
    전개방식도 그렇고;; 근데 그림은 정말 매력적이라는것 차라리 이그림체로 다른 작품을 그렸다면
    얼마 좋았을까 생각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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