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닥사'를 하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전자 오락을 접한 후로 지금껏 나는 RPG형태의 게임을 하면서 소위 '닥사', 즉, '닥치고 사냥'을 해 본 일이 딱 한 번 있다. 그 딱 한 번이라는게 바로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게임보이로 한 '포켓몬스터'(옐로우 버젼). 사천왕을 깰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레벨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지면 쉽겠지! 하는 마음에 '수련 동굴'에서 그냥 죽어라 전투에 전투만 거듭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그런 '닥사'라는 개념에 학을 뗀 것 같다. 어렸을 땐 그걸 했었지만 그걸 한번 하고나니 너무나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 그건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레벨업을 할 방법이 정말 오로지 그것 뿐이라면 그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그 게임의 구조를 성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방법을 제시할 때조차 닥사를 한다면, 그것이 게이머의 선택이며 그 선택을 게임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존중해야 하겠지만, 최소한 나는 공감할 수 없다.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도 그렇다. 난 채팅창에서 '닥사 버스' 같은 단어를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도 잘 이해가지 않는다. 나는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 닥사를 한 적도, 닥사를 해야할 어떠한 필요성도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영웅패를 모아서 의상을 모으고 싶었다. 일일 퀘스트를 통해 영웅패를 다 모아 옷을 사 입고 그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서 또 일퀘를 했다. 필요 이상으로 일퀘를 한 적도 없이, 그저 필요 영웅패 수를 맞추려 했을 뿐. 그래서 메인 퀘스트가 끝나갈 즈음의 진도까지 갔을 때 내 캐릭터는 이미 만렙이었다.

물론, 일퀘도 노가다다. 한 지역에서 일퀘를 하고 다음 지역으로 달려가서 또 일퀘를 하고... 이걸 매일하면 노동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일퀘에는 시작과 끝, 목적과 보상, 배경과 스토리, 이동과 행동이 존재한다. 그냥 신들린듯 한 장소에서 무작정 베고 베고 또 베어 넘기는 것을 몇시간 동안이나 하는 노고는 정말 어떻게 감내할 수 있는지 가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잘 모르겠다.

메인 퀘스트조차 진행하지 않고 무작정 닥사로 레벨만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블레이드 앤 소울의 중심은 '스토리'다. 그 스토리는 국산 게임치고는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몰입감을 주는 스토리다. 그러한 스토리 요소를 무시하고 게임을 했을 때 재미는 어느정도 반감될까? 행여나 '부캐'를 키우는 것이며 스토리는 이미 아는 내용이라도 이미 본 영화나 드라마 재감상하는 경우처럼 다시 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와우 할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와우는 그저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만렙이 되었고, 휘장이나 탈것이 갖고 싶어서 일퀘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돈이 쌓였다. 여기서 만약 내가 그저 '닥사'를 했다면 내가 종종 공격해서 죽이곤 했던, 숄라자르 분지에서 24시간 사냥만 하던 중국제 호드 데스나이트 오토와 다를게 대체 뭐였을까?

그 '일퀘'에 어떠한 인센티브도 없고 또 그 구조가 재미도 하나도 없다면 그 일퀘를 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와우의 일퀘들은 '업적'이라던지, '휘장'이라던지, '세력 친밀도'라던지 '탈것'등의 여러 요소로 보상심리를 충족시켰고, 또한 그 구조도 다양하게 존재했다. 비행기를 탄다던지, 탱크를 몰아본다던지, 모험을 하고 돌아온다던지... '누구 목을 몇개 따오시오'의 반복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블레이드 앤 소울'은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대어방 총타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일퀘들은 그나마 신선했으나 이것도 반복되면 재미가 없어진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 성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뛰었으면 뛰었지 트레드밀에서 못박혀 계속 뛰는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비록 내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성향에 맞는 사람들에겐 또 '닥사'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닥사 앤 소울' 이라던가 '닥사를 강요하는 블소' 등의 표현들이 불평불만으로써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닥사를 하는 사람들도 닥사를 즐기는 것 같지는 않으니 이것도 또 모를 일이다.



[섭광은 유란에게 홀려 천명제를 열고 고도시를 작살냈는데...
유란이쯤 되면 사실 홀랑 빠져줘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군주라면 암군이 되겠군]


[아예 레벨이라는 것 자체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는 게임구조를 만드는 것도 좋다]

덧글

  • 토나이투 2013/04/03 11:25 #

    생수카이림은 레벨 걱장없이 콘솔...을 너무쓰면 재미없고

    레벨신경 안쓰고 아이템과 다양한 전투방식으로 풀어나가서 할때마다 즐겁게 했던것같아요

    이게다 푸스로다 덕분입니다
  • 斧鉞액스 2013/04/03 11:27 #

    정말 여러가지 단물을 다 빼먹고도 모드 때문에 더 빨아먹을게 있다는게 엘더스크롤의 장점이지요.
  • 환야 2013/04/03 11:54 #

    오늘 너도엔젤보고 빡쳤습니다[...]
  • G-32호 2013/04/03 11:57 #

    한국에는 왠지 뭐 모아오라거나 뭐 잔뜩 쳐잡고 오라는 닥사 노가다가 범람하는 느낌이죠. 외국에도 그런 게 있다고는 하지만 국내엔 그런것만 남은 느낌이랄까 안그런것들도 레벨업을 안하면 진행안되는 구조가 절대다수라..
  • 리리안 2013/04/03 12:06 #

    와우는 정말 그 닥사 요소가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라 좋았던 것 같아요(요즘 일퀘는...ㅡㅡ+) 스카이림은 최근에 막 시작해봤는데 재밌더군요 ㅎㅎ
  • Rancelot 2013/04/03 12:27 #

    삼다수로 새로 나온 파엠을 하던중인데 2세대 육성때문에 노가다 하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잠시 접어두는 중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같은 게임 2회차는 어지간하면 못돌리겠더군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2013/04/03 12:42 # 삭제

    일일퀘도 닥사의 변형....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한거 또 하고 한거 또 하고 질리다 못해 이젠 너무 혐오함

    사람이 아니라 오토 로밍 사냥봇이 된거같음
  • Sakiel 2013/04/03 14:43 #

    근데 일일퀘는 일종의 마지노선이라...별수없음. 어차피 컨텐츠가 끝나면 반복컨텐츠를 만들어줘야 하고 닥사보단 일일퀘가 동기부여에 더 도움이 되니.
  • 초록불 2013/04/03 13:01 #

    즐기지 못하면 게임을 접는 게 맞지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는...
  • 2013/04/03 13:18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NRPU 2013/04/03 17:43 #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아니 닥사를 즐긴다고 착각하는 시점부터 문제라고 해야할까요...
  • 펜헤릭스 2013/04/03 20:03 #

    저는 닥사는 닥사대로 하면서 스토리 영상은 스킵하지 않고 다 보는 타입인데 이것도 꽤 할만합니다.
    닥사로 만렙찍고 다시 돌아와서 퀘스트 진행하는건 귀찮기는 하지만 같은 던전 내에서 몇번 도망가는 적을 강력한 스킬 한방에 죽여서 맵을 뻥 뚫는 재미라든가 (…) 적정렙대에서는 몇번씩 눕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려운 흑창족 구간같은 곳도 술렁술렁 지나갈 여유가 생긴다든가….
  • 허안 2013/04/04 11:11 #

    아직은 와우만한 mmorpg는 없죠. 근데 시간이 없어서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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