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社의 작품 [킬라킬]을 참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24화 완결편까지 단숨에 돌파하고 나서도 여전히 어떻게 설명하는게 좋을지 난감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런 남감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게 있다면, 그건 이토록 보는게 즐거운 작품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는 사실이다.
일견,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킬라킬은 맨살 노출이 많아 음란한 코스튬을 입은 여자들이 반쯤 헐벗은 가슴을 출렁이는 변태 만화처럼 느껴질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킬라킬을 보지 않았던 것도 어느정도는 그런 편견에 기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킬라킬의 '헐벗음'은 性적 어필이 아니라 주제의식이자 당당한 자신감이다. 킬라킬은 절대로 그냥 눈요기 만화로 폄하할 작품이 아니다.
첫 인상으로 말하자면, 참으로 정신 사납고 혼잡하며 소란스럽고 황당한 내용이었다. 내가 킬라킬을 '혼잡'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 숨막히듯 빠르게 휘몰아치는 전개와 극으로 과장된 인간군상, 정신없이 드라마틱한 연출이 헐벗은 둔부의 에로스 가득한 이미지에 합쳐져 시너지를 낸 결과이리라. 그러나 그 '혼잡함'을 한꺼풀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직관적이고 명쾌한 이야기다.
반론하기 힘들만큼 탄탄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이야기 전개와 반전요소, 그 전개의 개연타당성을 보조하는 복선들의 안배와 회수, 매력있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알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식 -(( Assimilation(동화同化)과 Conformity(순응順應)에 대항하는 자유의지와 개인성(Individuality)에 대한 찬미, 사랑과 우정의 위대함, 부모 세대의 부채와 억압에 대한 저항정신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요즘 보기 드물게 정석적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제작진이 같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킬라킬은 너무나 많은 점에서 2007년작 [천원돌파 그렌라간]과 닮아있어, 가히 그렌라간의 정신적 계승작Spiritual Succesor이라고 불러도 좋을 작품이다. 또한 쇼와시대 후반 서브컬쳐에 대한 오마쥬와 헌정Tribute으로 가득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킬라킬을 보는데 있어 쇼와시대나 그렌라간을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킬라킬이라는 작품 그 자체의 개성과 매력에 빠지고 나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정말이지 숨가쁘게 휘몰아치는 작품이었다. 각각 반항아와 혁명가의 두 狀을 제시하는 두 주인공 류코와 사츠키의 타오르는 투지와 의지, 그리고 그 두 주인공을 '으리'있게 격려하고 지원하는 멋진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깊숙히 감정이입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 그렇게 감정이입하고 나면, 24화의 클라이맥스까지 다다르는 것은 순식간이며, 감동의 도가니 속에 미소지을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뭐랄까, 애니메이션이니까 가능한, 애니메이션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가장 애니메이션 다웠던, 그런 작품이었다.
태그 : 킬라킬, KillLaKill






































덧글
그렌라간 제작진다운 퀄리티였다고나할까요? =ㅂ=